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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

지옥은 세상에도 있다

by miel





일이건, 사랑이건 어떤 것이건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삶을 살아간다. 인간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진 존재이므로 사람과 만남속에 많은 일들이 사건이 되고, 경험이 되며, 인생이 되어간다. 상담직이 직업인 나는 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사람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안목이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목적과 의도와 자칫 어긋날 수 있는 어설픈 솔직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자신은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유부단한 사람일 수도 있다. 신중한 사람과 우유부단한 사람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와 결단력, 추진력의 차이이다.






우유부단한 사람은 자신의 결단과 추진력을 갖지 못함으로 인해서 주위를 혼란에 빠트린다.

신중한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인지하고 있으며 목적에 맞는 여려가지 자신이 원하는 조건과 현실을 비교하고, 얼마간의 시간동안 확률과 타협을 통해 더이상의 더이상의 진전이 없이 제자리에서 맴돌게 되는 고민지점이 왔을때 결단한다.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고 리스크가 없는 결정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며 그 이상은 움직이지 않았을 때보다 움직였을때 더 리스크가 감소한다는 것을 판단한 것이다. 그외에도 지속력, 인내, 이타성 여러가지 요소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다.

그치만 세상에 다 좋은 것은 없다 그 요소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안목의 기준으로 설정해놓은 것 또한 중요하다.






완벽주의자의 흔한 실수는 100%로의 확률이나 그에 근접한 확률을 찾고 싶어한다. 그것은 과도한 욕심이며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 오류이다. 100%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100% 완성은 다이아몬드처럼 그만큼의 값비싼 가치를 지닌다.


70% 정도의 성공확률과 20% 정도의 시간을 인내하는 미학이 필요할 때 그것은 거의 저평가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10%는 우리의 예측 너머에 존재하는 운이라는 영역이며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확률영역이다.

인생에 성공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확률을 받아들인다.






전체를 파악한다는 것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가령 오렌지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700백원이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500-600백원에 거래되고 있다면 전체를 파악하는 사람은 500백원을 살 수 있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700원에 살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은 그러한 원리로 작용된다.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이다. 첫사랑은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기에 실패하기 좋은 확률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해야만이 이성의 특성과 일반적인 평균이 나올 것이고, 거기에 나의 성향에 맞는 사람이나 내가 좋아하는 성향이나, 관점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이다.





투자에 있어서도 , 직업에 있어서도 그렇다.

70% 정도의 확신이 있다면 도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가보지 않는 길을 무지함이고, 경험해 본 것은 지식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를 많이 해야 한다. 실패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거짓말이다.

여러번의 실패는 과정이며, 경험이며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연애를 할 때도 사람을 보는 안목이 아주 중요하며, 투자를 할 때도 투자를 권유하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중요하며, 직업을 만날 때도 회사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인품을 보는 안목이 중요하고, 혼자 사업을 할때에도 거래처의 대표를 보는 안목이 중요하고, 회사를 운영할 때에도 직원을 채용할 때 사람을 보는 안목이 중요하다.






아무리 경험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은 첫단계의 시작단계의 관점이지 몇번의 경험을 할때마다 사람을 연구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가지며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사람을 보는 기준이 만들어진다.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이 객관적인 성향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편협한 관점이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편협한 관점이 아예 관점이 흐릿한 것 보다 낫다. 편협한 관점은 적어도 나와는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아주 다른 사람을 만나면 삶이 고통이 되고, 지옥이 될 수 있다.

삶이 지옥이 되지 않으려면 타인에 대한 의존성을 없애야 한다.

타인에 대한 의존성은 자신이 갖고 있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서 얻으려 하는 심리가 작용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에게서 누군가가 얻으려고 집착을 하면 그것을 부담스러워 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 존재만으로도 감당하기 버겁기 때문에 누구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을 거부하는 특성을 지닌다.






타인의 의존성은 타인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생겨난다. 나의 모든 삶은 혼자서 간다라는 것을 전제로 인생을 살아가야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는다. 가장 친밀한 부부관계 조차 인생은 혼자서 가는 과정이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칼융은 인생은 혼자서 온전하고 충만하고 풍요로운 상태가 되어야만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불완전한 인간과 불완전한 인간이 만나면 전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전쟁은 관계가 지속되는 한 계속되는 것이다. 서로의 결핍을 채우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며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결국 결핍은 자신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성숙한 인격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지 타인이 체워줘야 할 숙제가 아니다.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은 자신이 먼저 의존성과 결핍을 갖지 않는 상태로 성숙한 인격이 되어야 가능하다.

자신의 관점이 외곡되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외곡되어 사람을 보는 안목을 제대로 갖지 못하기 때문에 삶은 전쟁이 끊이지 않게 된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생기면 빠른 판단과 신속한 결정으로 시간의 낭비나 고통을 줄이게 된다.

수십명의 면접으로 열 번 직원을 채용해서 한 명을 얻는 것과 한두명 직원을 채용해서 내사람을 만나는 것의 차이이며, 수십명을 만나보고 결혼했는 데 두번을 이혼하는 것과 열명을 만나 한명과 평생 살아가는 것의 차이이다. 지금의 추세로는 앞으로 아마 이혼, 삼혼, 사혼이 많아질 것 같다.






그러나 10%의 운의 영역이 있기에 확률을 계산하지 않았더라도 몇번만에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 글을 쓸 때 늘 예외가 있다. 일반적인 영역과 특별한 영역이 있기에 그것은 내가 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지금 이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의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보는 안목을 키우며 혼자있는 것이 외롭지 않고 자유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결핍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시간을 갖으며 이또한 사람을 보는 안목이 키워진다. 왜냐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타인을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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