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다

사는 이야기

by 미미

2024년 10월 2일


어제 해질녘부터 싸늘한 바람이 불

시작하더니 오늘 새벽의 마루는 긴팔

옷을 입고도 어깨가 움츠러 만큼 냉냉하다

주섬주섬 덧옷을 찾아 걸쳤다

제멋대로인 기온에 코가 막혔다 뚫렸다,

패딩을 제외한 나머지 옷들이 모두 나와 계절 없이

엉거주춤이다 철지난 옷들을 우고 싶지만

계절의 경계가 있지도 없지도 않으니 정리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다 밑도 끝도 없는 인생

이래저래 미해결인 채로 널부러지는 것들이

점점 늘어간다

그래도 날씨는 기막히게 좋다 파란 하늘과

아름드리 사이로 미끄러지듯 바람이 지나가면

공원의 나무들은 빛 바랜 초록 어깨를 흔들며

너울거린다 잎새들이 즐거운 파동에 몸을

뒤척일 때마다 햇빛 부스러기가 길 위

드러눕는다 아스라이 멀던 바다의 윤슬이 내 발

아래에서 반짝거린다

경쾌하게 흔들리는 빛 사이를 자박이는 동안

오랜만에 마음이 조용해졌다 삶을 바꿀 거라

기대했던 깨달음이 사실은 무용지물이었음을

깨닫는 윤회의 난타전 너덜너덜해지도록

두들겨 고 다시 일어서려니 생에서

누락된 사랑들이 발목을 붙잡네 결핍의

열매가 풍년인 나의 곳간에서 걸어나온

그녀 어른도 아이도 아닌

기괴한 그녀와의 동거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해탈의 담장 밖을 엿본 뒤의 나락은 재기불능의

완패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괴로움의 약발이 다했는지 모든 문제가

나에게서 비롯됐다는 말이 다시 힘을 얻고

용기를 내라 독려한다 분별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이번에는 버릴 수 있을 거라며

나아가 늘 나를 원점으로 끌어내리고 혼돈 속에

가두는 불안이 조금씩 쌓이는 글의 힘으로

순순해지고 있는 요즘 살림 사느라 글 쓸 여력이

없어 억울해 죽던 마음을 내려놓고 문장신과의

접신 안테나를 벼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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