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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Apr 23. 2021

봄 바다가 보고 싶어

봄이 좋아져서 다행이야


봄이 시작되면 입덧하는 임산부처럼 모습이 변해갔다. 피부는 까칠해지고 입맛은 사라지고 기분은 예민해진다. 짧디 짧은 봄이지만 봄은 건너뛰고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봄이 되면 유난히 힘들어서.


꽃이 피고 연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봄은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서 풍경을 보고만 있어도 힐링되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좋은 봄날에 유난히 바쁜 시기와 맞물려서 봄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현실은 봄이 그저 얄미울 뿐이다.


까칠하고 예민하고 힘들었던 봄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어느 해 봄날 다녀온 여행 덕분이다. 그때도 여전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친구들과 함께 1박 2일 봄을 찾아 떠났다. 포기했던 봄날을 처음 누려본 여행이었다.


설렘이 가득한 봄날,  일밖에 모르고 살던 시간 속에서 벗어나 다른 환경에서 만나게 된 봄날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모르고 살았던 시간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늘 하던 대로 가 아닌,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산을 좋아하던 내가 바다를 보러 갔던 날, 봄 햇살과 어우러진 바다 빛은 투명함 자체였다. 봄 바다를 그때 처음 보았다. 맑고 푸르렀다. 나와 상관없던 세상에 그렇게 한 발을 내딛게 되었다.


잠시 손에서 놓았던 일들은 다시 돌아간 곳에 그대로 있었다.  별 탈 없이, 아무 일 없이.


큰일 날 거처럼 책임을 다해 일했던 시간이 무색해졌다. 지나간 많은 봄날을 나는 어디에 저장해 둔 것일까, 저장된 지나간 봄을 다시 꺼낼 수는 있을까?


봄 바다를 보고 난 후, 매년 봄이면 어디로든 봄을 만나러 다녔다.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부족해도 봄을 찾아 나서는 일을 빼놓지 않게 되었고 미뤄둔 일로 마음은 좀 무거울지라도 그 시간을 소중하게 챙기고 즐겼다.


기대도 없이  희망보다는 일에 대한 중압감을 먼저 느껴야 했던 지난날의 봄은 이제 없다. 푸른 바다를 보며, 싱그러운 산을 오르며 잠시 일상을 벗어난 시간 덕분에 잃어버린 봄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스스로 찾은 봄이 반갑다.


그렇게 봄이 좋아졌다. 마음이 달라지고 바라보는 봄은 완전히 다른 봄이다. 봄이 주는 모든 희망을 느낄 수 있었고 매년 찾아오는 봄을 기대하게 되었다.  해야 할 일에 치여서 미리 포기해버린 봄은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니 짓눌린 지난날의 봄날이 안쓰럽다.


봄이 떠나고 있다.

봄 바다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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