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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May 04. 2021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를 읽고

읽고 싶지 않았지만, 읽고 말았습니다.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봄풀 출판사에서 펴낸 이 연 작가님의 저서입니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선뜻 구매하지 못했어요. 이 책을 읽는 동안 겪어온 아픔이 그대로 되살아날까 봐 망설여졌습니다.


치료가 거의 끝나가는 저와, 아직도 항암치료를 받고 계시는 엄마, 이제 막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시아버지.

암과 함께 살아도 다르지 않음을, 암과 살기에 많은 것들이 다름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채워질까 봐 선뜻 읽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읽게 되었습니다. 읽고 싶지 않았는데 읽게 된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를 읽고 암 환우로서 공감하며 경험을 함께 이야기 나누듯이 적어봅니다.






그러게요, 뭘 그렇게 잘못했겠어요?


암입니다, 진단을 내리는 의사는 정말 무미건조하게 암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더군요. 너무나 평온하게 조용히 말해줘서 암이라는 병이 감기쯤 되는 듯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긴, 의사 입장에서는 그것이 일이므로 그저 일에 열중하며 의무감으로 말해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진료실 밖으로 나와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의사의 무덤덤함에 전염이라도 된 듯이, 실감 나지 않은 날이 여러 날 계속되었습니다. 도대체 암이 왜 온 거지? 암이라고? 어처구니없는 일쯤으로 느껴진 시간을 꽤 보낸 거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한 건가 생각하게 되면서 힘들었습니다. 정말 착하게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뭘 잘못해서 벌을 받는 것일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자책의 시간이 길었습니다. 지금도 때때로 끼어들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수술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저자가 암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씀하셨듯이, 저도 암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지금도 잘 모릅니다. 알고 싶지 않아서 이런저런 많은 정보를 눈 감고 귀 닫고 외면했습니다.


한 가지, 수술하고 치료받으면 그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만 가지고 있었지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해도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절망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해도 올라오지 않는 체력에 한계를 느끼며 실망하고 다시 일어서고 또 절망하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포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인정할 수 없어서 포기할 수 없어서 무리하다가 오히려 고장 나는 몸 상태가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었지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 알았어요. 이대로 만족하며 살게요.








엄마들은 다 그런가 봅니다.


자식들이 힘든 상황이 되면 모두가 당신 탓인 듯 여기십니다. 당신이 지은 죄로 딸이 몹쓸 병에 걸렸다며 가슴을 내리치신 저자의 어머님도 그러십니다.


암에 걸려 수술하고 엄마에게 뒤늦게 알리게 되었을 때, 나는 엄마도 아니라며 당신이 잘 먹이지 못하고 거두지 못해서 딸이 그렇게 되었다고 미안해하시던 엄마가 생각납니다.


엄마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엄마에게 죄송한 딸이 되어버렸습니다.







암에 걸리고 나니, 사람들의 인사는 무조건 괜찮아?입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대답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씀에 그랬던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요? 절대 괜찮지 않습니다. 모두를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 말이 싫습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몸에 적응해야 하고, 아픈 몸 때문에 지친 마음도 다스려야 하고,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의 안부에도 반응해야 하는 상황이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요? 묻지 마세요. 괜찮아지면 괜찮다고 말하게 될 겁니다.







몸은 마음을 완전히 통제하고 지배했다.


몸이 망가진 만큼 마음도 망가졌습니다. 일으켜 세워도 자꾸만 망가지는 마음은 다시 회복되지 않고 몸을 따라갑니다. 맘대로 되지 않는 몸으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했음에도 꺼져가는 마음은 다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내려놓고 포기하고, 다시 또 내려놓고 또 포기하고.. 다 내주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진 만큼 비워내고 나서야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스스로 견디기 힘들어서 저는 많은 것을 포기해버렸습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되지도 않음을 알기에.


비우고 포기하고 내려놓고 편안해진 마음에는 모든 것에 대한 의욕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몸이 망가진 삶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는 재미까지도.







그러게요, 정말 더 쓸데없이 살 걸 그랬습니다.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요? 결국에는 병든 몸이 되고 만 것을..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암 수술을 하고도 뭐 하러 직장 생활을 계속했을까요? 돈도 벌어야 했지만, 직장 생활마저 놓아버리면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 같았습니다. 그때는 포기하지 못하고, 분명 그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던 마음이 있었던 거지요.


그때 그만두고 쓸데없이 살았어야 했나 봅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성실하게 사느라고 애썼는지.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를 읽으며 투병생활을 함께 하듯이 쫄래쫄래 따라다녔습니다. 대부분의 환우들이 속으로 느끼게 되는 민망하고도 언짢은 상황들을 솔직하고 시원하게 글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의사의 입장과 환자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지요.


환자이기 전에 사람이고 여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조금만 배려해 준다면, 조금은 덜 비참하고 민망함이 덜할 것 같은데, 환자는 그것을 표현하기 쉽지 않고, 병원 관계자는 그것을 겪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으니 배려하기 힘든 일이겠다 생각되기는 합니다.


유방암 치료를 위해 가슴을 훤히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비참한 일인지 겪어봐야 알겠지요.

대장암 치료를 위해 항문을 드러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비참한 일인지 겪어봐야 알 겁니다.


이 책을 병원에서 환자를 대하는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암은 특별한 누구에게만 오지 않습니다. 4명 중 3명이 암이라는 통계를 본 기억이 납니다. 흔하디 흔한 것이 암입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고, 암과 살면 많은 것이 다르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몸의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저자의 삶을 응원합니다. 몰입과 희열로 영혼을 깨우는 행복한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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