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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May 27. 2021

대장암 수술 후 5년, 왜 완치라는 말을 안하지?

오늘 나는 주문을 걸었다.


2년 후에 봅시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3시간을 기다렸다니, 허탈했지만, 별일 없음을 확인한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지난주에 암 산정특례 만료 전 대장 내시경을 하고 오늘 결과를 보러 갔다. 유난히 대기시간이 길어져서 힘들게 했다. 초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서 더 힘들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별일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확인하기 전까지는 늘 마음이 조마조마함은 어쩔 수 없다.


5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고, 두 달 후 수술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3개월에 한번, 6개월에 한번, 1년에 한번 기간을 늘려가면서 정기검진을 하면서도 늘 마음은 같았다. 혹시라도 하는 염려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갔다가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며 웃을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이다.


5년이 지나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는데 오늘 난 완치라는 단어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2년 후에 보자는 말에 그만큼 길어진 시간만큼 나의 몸도 암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 가면 정말 많은 환자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아픈 사람이라니.. 병원에 갈 때마다 건강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대장암 수술을 하고 가장 큰 몸의 변화는 예민해진 장의 활동이다. 5년이 지나도 예민해진 장은 더 이상 좋아지지 않고 여전히 예민하다. 몸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도 세월이 흐르니 또 변화된 몸에 적응하며 살아진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몸의 변화일 테니, 내가 적응하는 것이 맞겠다 싶다. 맞춰 살아야지 어쩌겠나.


때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원망스럽고 화가 날 때도 많았다. 화를 낸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참기 힘들 때도 있었고, 억울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었다. 따지고 보면, 스스로 몸 관리를 못해서 생긴 일이니 화낼 자격도 없고 억울해할 일이 아닌데도 그때는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더랬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몸은 이미 변해버린 모습 그대로다. 다시는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앞으로도 계속 적응하며 살아야 할 테지. 적응할 만큼 했으니 나름 불편함도 사라지고 지낼만하기도 하다. 이제는 원래 그런 불편함을 안고 살았던 것처럼 그냥 살아진다.







대장암 수술 후 5년이 지났다고 해서 오늘과 내일이 완전히 다른 날이 되지는 않겠지만, 난 오늘 주문을 걸었다. 오늘부터는 좋은 날만 이어지기를, 오늘부터는 즐거운 일만 생기기를, 오늘부터는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일상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주문을 걸었다.


아프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평범한 일상을 뺏기고 나서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겠다. 이 나이쯤 되었으니, 앞만 보고 살기보다는 앞을 내다보며 여유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챙기며 살아야겠다. 그 누구도 내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스스로를 챙기는 똑똑한 내가 되어야겠다.








대장암 수술 후 5년 경과, 처음에는 그냥 무덤덤한 기분이더니, 갈수록 묘한 기분이 찾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지난 5년의 시간을 떠올리며 많은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너무 많은 기억들이 너무 많은 생각들과 엉켜서 표현이 쉽지가 않다. 오늘이 지나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이 기분이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확실한 것은 기분이 좋은 것보다 홀가분함이 먼저 찾아왔다.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기분이 홀가분하다. 기쁘고 좋을 줄 알았는데 홀가분함이 먼저라니 좀 의외기도 하다. 그다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별일 없이 5년을 잘 보냈고, 잘 견디며 잘 버티고 꿋꿋하게 잘 살아낸 것에 감사했다. 스스로 토닥이며 칭찬해 주고 싶다.


염려해 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고 잘 치료해 준 의사선생님도 감사하다.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을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홀가분함으로 살아가고 싶다. 다시는 아프지 않도록 해야지. 앞으로는 좋은 일 가득한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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