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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Jul 01. 2021

소나기가 그치고 나면 무지개가 뜨기도 한다

지난여름 이야기


새벽 두 시, 병원 휴게실에 앉아서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통화 내내 서로 울먹임을 참느라 힘들었지만, 누군가 울어버리면 멈추지 못할 거 같아서 서로 입술을 깨물며 참아냈다는 것을 안다.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병원 당번을 맡은 사람이 상황을 설명하고 의논하기 위해 수시로 통화를 하곤 했었다.



뜨거운 여름날, 소나기라도 내려주면 좋을 만큼 뜨거운 날에 엄마는 몸살을 앓았다. 응급실을 오가며 검사를 했지만, 해결되지 않아 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각종 검사로 인해 병명이 나오기도 전에 엄마는 지칠 대로 지치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지쳤다.



최종 암 진단을 받고  보낸 그해 여름날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건강하기만 한 엄마는 뜨거운 여름날에 덜덜 떠는 오한을 느끼며 몸살을 앓아야 했고, 자식들은 번개를 맞은듯한 충격을 받았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엄마였기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건강하게 활력 있게 농사일을 잘하시던 엄마는 몸살과 함께 찾아온 암과 싸움을 시작했다. 암의 크기가 커서 수술을 할 수도 없고, 암의 위치가 옹색한 곳에 있어서 다른 장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더 조심스러운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의사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으로 답을 대신할 뿐,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엄마는 모든 검사가 끝나자 곧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엄마는 씩씩했다. 항암치료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설명해야 했고, 다 듣고 난 후 치료하면 되지, 라는 말씀으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식들 걱정할까 봐 그런 건지, 실제로 그런 마음이었는지 알 수 없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고생하면서도 포기를 몰랐고,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먹지 못하고, 기운 없어 움직이기 힘들어 보였지만, 힘듦을 내색하지 않는 엄마만큼이나 우리들도 절대 힘들거나 속상함을 내색하지 않았다. 서울과 시골을 오가면서 여행하듯 다녔고, 엄마를 만나는 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웠다. 암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고는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다.



가끔은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똘똘 뭉쳤던 시간을 보냈다. 객지 생활하며 미처 몰랐던 엄마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엄마와 우리들은 더 돈독해졌다.








어릴 적에 살던 시골에는 놀이터가 따로 없었다. 마을 신작로에서 놀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흙냄새를 들이마시며 집으로 뛰어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른 신작로에 굵은 소낙비가 내릴 때 흙먼지가 날리고 흙냄새도 났던 그때는 참 좋았었는데, 예고도 없이 내리던 소나기에 흠뻑 젖으면서도 즐거워했던 그 시절은 유일하게 걱정 없이  살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병원 휴게실에 앉아서  돌아가며 전화 통화를 하던 그 여름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울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론 눈물도 참아야 하고 우는 것은 좀 나중으로 보류해야 할 때도 있더라.



뜨거운 여름날 몸살처럼 찾아온 엄마의 아픔은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우리들을 허둥대게 만들었다. 엄마를 위해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모든 것을 할 수 없게 될 거 같았다. 시련은 사람을 철들게 하나보다. 어려운 상황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렸고 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해가며 앞으로 대처해야 할 일을  준비해 나갔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으며, 우린 눈물보다는 웃음을, 걱정보다는 격려를 보내며 서로가 서로를 응원했다. 엄마는 여전히 씩씩하게 치료 중이며 우리는 변함없이 서울과 시골을 오르내린다.



희망을 안고 한마음이 되어 바라고 믿는다. 소나기가 그치고 나면 무지개가 뜨기도 한다는 것을.@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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