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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Jul 06. 2021

모두가 다 여름이었어, 그래도 괜찮아

여름이야기


"아휴~ 못 해 먹겠다, 화가 나서 미치겠다."


벌써 몇 번째 이런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달랬고 그다음에는 또 그랬냐며 들어줬고, 또 그다음에는 환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현실을 되새겨주었고 또또 그다음에는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다. 외래 진료가 있거나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위해 병원에 갈 때마다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화를 참지 못할 때면 전화를 한다.


건강하실 때는 많은 연세에도 그렇게 총명하셨었다. 어느 순간 건강에 이상이 생기더니, 총기도 사라지고 고집이 생기는지 아들 말을 잘 듣지 않는 거 같다. 며느리인 내가 갈 때는 부딪히는 일 없이 순조로운 하루를 보내는데, 아들이 가면 꼭 마찰이 생겨서 결국에는 화를 참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고 만다.


내가 갈 때도,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말하고 또 말하고 또또 말하고, 몇 번이고 말해서 기억하고 주의하게 한다. 그렇게 얘기를 해도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자꾸 잊어버리고 간호하는 사람 힘 빠지게 하는 일이 많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들과 며느리가 다른가 보다.






아들은 아버지를 환자로 보고 싶지 않은 것인지, 환자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인지, 건강할 때의 모습으로 상대를 하는 거 같다. 몸이 아프고 많이 불편해진 상황임에도 그냥 예전의 아버지로 대하고 싶은가 보다. 자식들에게 민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시던 아버지가 힘이 빠지고 기억해야 할 일들에 대해 잊어버리고 실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속상함을 넘어 화가 나는가 보다.


변한 아버지를 보며 화가 난 아들 때문에 아버지도 화를 내고.. 그러다가 서로 부딪히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며느리는,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일까?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이는 오랜 세월을 지낸 만큼 돈독하고 허물없는 편이다. 맏며느리라서 인지 거의 모든 일에 의지하는 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일을 반대한 적이 없을 만큼 믿어주셨다. 며느리인 나는 아들과 부딪혔던 똑같은 상황이 주어질 경우 반복적으로 계속 이야기하는 쪽을 택하며, 이해를 시키고 기다려주는 편이다. 지치고 기운이 빠지기는 해도 부딪히며 화내는 상황은 생기지 않는다.


아들과 며느리의 입장 차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사위와 딸도 마찬가지겠지. 나의 부모에게는 더 쉽게 대하고 강하게 표현하며 대놓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장모나 시부모님을 대할 때는 다를 수도 있겠다.







뜨거운 여름날에 화를 참지 못해 더 뜨겁고 치열하게 보내고 있는 우리 부부, 몇 년 전부터 힘든 일은 모두 여름에 일어났다. 5년 전 나에게 찾아온 아픔도 여름이었고 4년 전 엄마에게 찾아온 아픔도 여름이었으며 그리고 또다시 올해 여름에는 시아버지의 아픔으로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병원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보니 병간호는 우리 부부가 돌아가면서 도맡아 하고 있다. 누구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젊은 시절 자식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하며 치열하게 살아오신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랐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본받으며 자식들도 열심히 살아간다. 힘 빠지고 약해진 부모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이 편치 않다. 짠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현실을 피할 수는 없다.


아버지와 자꾸 부딪히며 마찰이 생기는 아들의 마음도 편할 리는 없다. 그런 날은 집에 와서도 속상함이 사라지지 않아 또 마음이 쓰리다. 아무리 이런저런 말로 위로를 하고 현실을 인정하며 받아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속상함은 남아있다. 여름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것만큼 마음에도 울컥하는 뜨거움이 차오른다.


비록 속상해서 화를 낼지라도 그 밑바닥에 깔린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안다. 속상한 마음이 화내는 것으로 표현이 되기 일쑤지만, 그것도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리라.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속상한 마음을 털어내며, 하루빨리 예전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아버지에게 내던지는 것이리라.








뜨거운 여름날의 고약한 현실이지만, 우린 또 툴툴 털어내고 일어나듯이 잘 이겨낼 것이다. 잊을만하면 찾아온 여름날의 아픔은 더 단단한 마음을 갖게 해 주었고 견디는 힘도 함께 주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따금씩 부딪히며 질러대는 화풀이는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는 구름처럼,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소나기처럼 각자의 마음에 쌓인 지친 감정을 잠시동안 해소하는 것이라 믿는다. 가끔은 마음도 청소하듯 쓸고 다듬어야 할테니까. 


힘들게 하는 모든 일들이 여름에 찾아왔다. 그래도 괜찮다. 우린 또 이겨낼 것이니까.@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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