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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Jul 08. 2021

남자는 살림하고 여자는 이별하고

보쌈 삶는 남자


언제 와?

어디쯤이야?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언제 오냐고 묻습니다. 집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쯤이냐고 또 확인을 합니다. 아니, 왜 안 하던 퇴근시간을 체크하는지 의아스럽지만 어디쯤이라고 알려주고 집으로 향합니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여기 우리 집 맞아? 놀란 마음으로 무슨 일이지? 궁금해하며 들어섭니다.


고기가 먹고 싶어서 사 왔답니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 맞춰서 보쌈을 준비하고자 그렇게 퇴근시간을 확인했나 봅니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며 힘든 하루를 마치고 퇴근을 하면, 나보다 먼저 와 있어도 절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얼굴에 대고 배고파 밥 줘! 가 인사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다시 돌아서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도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퇴근이 아니라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기분은 저녁시간을 망치기 일쑤였지요.


빨래건조대에 빨래가 넘쳐나도 정리하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고, 집안이 어질러져 있어도 청소하는 사람은 늘 제 몫이었지요. 다행인 것은 본인이 하지도 않지만 잔소리도 안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늘 그날그날 해야 하는 일들이 정해져 있어서 날마다 하루의 일상이 버거웠습니다. 그런데도 참 끈질기게 잘 버텨냈습니다.


일하는 엄마를 둔 덕분에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했고,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다 채워주지 못해 부족함을 느끼는 엄마이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 길들여진 시간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하루하루 버거울 때 어쩌다가 부탁을 하면 겨우 부탁한 것을 들어줄 뿐, 스스로 알아서 챙기는 것이 서툰 사람이었습니다.


어질러진 모습이 내 눈에는 보이는데, 본인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였는지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나의 입장과 최선을 다해서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입장 차이는 컸고, 어쩌다가 그런 일 서로 마음이 상하기도 했었답니다. 아이들이 크고 나니, 이제는 도와주지 않아도 별로 힘들 것도 없는데, 또 웃긴 것은 지금은 그때 원했던 모든 것을 다 잘 보고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쌈을 준비해놓고 집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 와? 어디쯤이야? 몇 번을 확인합니다. 고기가 식으면 안 되잖아요. 집에 도착해 들어서기 바쁘게 말합니다. 밥 먹자! 오래 살고 볼일입니다. 밥 줘~ 가 아니고 밥 먹자!로 바뀌었으며, 그것도 스스로 저녁을 준비하고 챙기는 모습으로 변하다니, 어떻게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고기를 삶고 쌈장을 만들고 야채를 씻어서 준비하느라 애쓴 모습이 훤하게 그려집니다. 큰 키로 낮은 싱크대 앞에 서서 야채를 씻는 것이 허리가 많이 아픈 일이잖아요. 그것만으로도 크게 점수를 주고 싶네요. 덕분에 아주 맛있는 저녁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한번 그렇게 하고 나더니, 저녁을 해주는 횟수가 점점 늘어납니다. 고기 삶는 솜씨가 저보다 낫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정성을 들여 맛있는 보쌈을 삶는 남자입니다.


보쌈을 다 먹고 난 후, 서비스로 청소까지 해줍니다. 덕분에 맛있고 편안한 저녁시간을 보냅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변해갑니다. 아내가 귀하다는 것을 깨달았나 봅니다. 나이 들면서 남자는 살림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여자살림을 멀리하게 되는 걸까요? 저는 요즘 살림과 이별 중입니다. 보쌈 삶는 남자를 응원합니다. @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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