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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Sep 24. 2021

속리산의 가을

가을연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도봉산에 올랐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 쌀쌀함이 느껴지지만 낮에는 한여름만큼이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다.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여름 산행만큼이나 덥다. 아직은 초록이 가득한 산이다. 무성한 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눈이 부시게 화사하다.



며칠 전 비가 오더니 계곡물이 세차게 흐른다. 가을이 시작되고 비가 자주 내린다. 가을장마라는 말이 있을 만큼 여름보다 가을비를 더 자주 보게 된다. 한여름 산행에는 계곡물이 말라서 아쉬웠는데 넘치듯 흐르는 물이 아깝다. 햇살은 고우나 물에 들어가기에는 차갑다. 발이라도 담그고 싶지만 차마 내딛지 못하고 계곡물 따라 걷기만 한다.



눈부신 햇살과 솔솔 부는 바람이 산행하기에 딱 좋다. 바쁠 것 없이 주변을 살피며 풍경에 빠져든다. 잠시 멈추면 땀이 식어 금세 몸이 추워진다. 쉬지 않고 걸어야 한다. 천천히 하는 산행은 힘듦이 없어서 좋다. 바쁘게 오를 때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인다. 자꾸만 주변을 살피게 된다. 느린 산행에서 맛보는 행복이다.








하늘도 보고 땅을 보며 걷다 보니 떨어진 나뭇잎이 보인다. 어느새 단풍이 들었다가 떨어졌다. 급하기도 하다. 아직은 초록으로 가득한데 벌써 빨갛게 물들어 나무와 이별하다니, 서둘러 떨어진 나뭇잎이 아쉽다.



단풍으로 물든 낙엽을 보니 오래전 속리산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아마도 처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친구들과 함께 1박 2일 산행을 했던 경험, 속리산에서 만난 가을은 잊을 수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일을 생각해 보면,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는 보통의 날이었음에도 두고두고 기억하며 미소 짓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산을 좋아한다. 수술 후 체력 저하로 힘든 산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심을 부렸고, 그 욕심을 채워주는 것은 언제나 친구들이었다. 멀리 갈 수 있도록 항상 함께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속리산에서는 산을 좋아하지 않은 친구들까지 함께 하며 즐겁게 산을 오르고 가을을 누렸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산을 오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에 말리지 않고 기꺼이 함께해 준 시간이었다. 산행에 물이 올라 날아갈 듯 즐거워하던 시기에 몸에 이상이 생겼다. 어쩌면 절망하며 포기하는 마음이 찾아올 수도 있었을 텐데,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추스르며 산행을 다시 시작한 가을이었다.




속리산의 가을




누군가의 마음을 받는 일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을 안다. 그 마음으로 인해 행복감이 넘쳐나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어 힘들어할 때,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어 속상해할 때 그 마음을 챙겨주는 이가 있다면 크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5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받았던 마음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가을은 좋은 계절이지만, 자칫 우울한 기분을 들게 해서 좋아하지 않았다. 때로는 스스로 감정 조절이 안되어 후회하는 경우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듯, 여러 가지 이유로 싫어했던 가을은 속리산에서 만난 가을 덕분에 좋아하는 계절이 되었다. 때론, 누군가의 작은 관심이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작은 배려가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주는 사람은 별일 아닐지라도 받는 사람은 크게 와닿기도 한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올가을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초록이 단풍으로 물들어가듯,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에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도 함께.



속리산의 가을이 파고든다. 다시 보고 싶다. @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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