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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Sep 27. 2021

하얀 주름치마를 입고

가을운동회


 

요즘도 가을운동회를 하는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을운동회를 한다고 해서 학교에 가보면 작은 행사에 흥이 나지 않았다. 학년별로 나누어서 하거나 오전 오후로 나누어서 자체 행사로 진행하다 보니 운동회라기보다는 학년별로 치르는 체육시간을 보는듯했다.



도시의 가을운동회를 보면서 기억 속에 있는 어릴 적 가을운동회와 많이 비교되었다. 시대가 다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운동회도 달라졌겠지만, 많이 아쉽기는 하다. 까마득한 옛날 가을운동회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 keizi5050, 출처 Pixabay




전봇대에 달린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우렁차다. 가을운동회가 있는 날이면 이장님이 틀어주는 신나는 음악 덕분에 온 동네가 잔치 분위기가 났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있는 날이면 마을 잔칫날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물론, 온 동네 어르신들이 학교로 와서 흥겹게 노는 하루였으니 이장님도 일찍부터 흥을 돋우셨나 보다.



가을운동회에 동네 어르신과 외부 손님들을 초대해서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기 위해 학교에서는 많은 준비를 했었다.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에 모여 학년별로 준비한 공연을 연습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선생님과 학생들이 한마음이 되어 애쓴 시간이 많았다.



힘들고 하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갖춰지는 행렬에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처음 배워보는 춤과 노래는 우왕좌왕 엉망진창으로 시작되었지만 연습이 더해지면서 점점 각이 살아나고 줄이 맞춰지며 요즘의 아이돌 못지않게 잘 추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저학년인 1학년 2학년은 색동저고리를 입고 꼬마신랑 각시로 분장하고 귀엽고 깜찍한 모습으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은 우리가 봐도 정말 예뻤다. 부모님과 어르신들의 눈에는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



고학년인 5학년 6학년은 부채춤을 추었다. 화려한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면서 보여주는 부채춤은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모양이 흐트러지면 예뻐 보이지 않아서 함께 춤추는 모두와 호흡을 잘 맞춰야 한다. 역시 고학년 다운 노련함으로 아름다운 부채춤을 선보였다.



중간 학년인 3학년 4학년은 하얀 블라우스에 하얀 주름치마를 입고 손에는 종이로 만든 큰 꽃을 끼고 이쁜 율동을 했다. 신나고 경쾌한 율동이었다는 것으로 기억된다. 많은 학생들이 줄을 맞추고 각을 맞추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하나 된 모습은 스스로도 기특한 생각이 들 정도로 잘했던 기억이 난다. 박수를 많이 받았던 것도.



하얀 주름치마를 입은 모습이 정말 예뻤다. 기분도 좋았다. 내가 주인공인 예쁜 소녀가 된듯한 착각이 들었다. 엄마는 하얀 주름치마를 다리기 위해 잘 쓰지 않던 인두를 꺼내고 숯을 준비하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 준비했다. 입에 물을 한 모금 머금었다가 하얀 치마에 후~~ 뿌리듯이 뱉으면 지금의 분무기처럼 뿌려졌던 모습은 봐도 봐도 신기했다.



찰랑거리듯 살에 와닿는 주름치마의 느낌이 좋아서 자꾸만 움직여 보기도 했었다. 언니에게 물려받았던 하얀 주름치마가 유난히 좋아서 가을운동회가 기다려지기도 했었다. 오래되고 낡아서 좋은 옷도 아니었는데 하얀색 주름치마가 왜 그렇게 좋았을까.








학년별 단체 율동과 여러 가지 게임들을 하면서 즐거웠던 가을운동회는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의 축제였다. 이어달리기, 공 던지기, 박 터뜨리기, 고싸움, 줄다리기 등등.. 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와닿는다.



옛날과 요즘의 가을운동회가 많이 다르지만 시기에 맞게 변해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하루 종일 축제 분위기였던 시골의 가을운동회, 지금은 학생 수가 줄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 경험했던 추억 속의 가을운동회는 다시 만나기 힘들겠지만, 모두의 축제는 되지 못하더라도 가을운동회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미


*인두 : 불에 달구어 옷의 솔기나 모서리 등 천의 구김살을 눌러 펴는 데 사용하는 바느질 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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