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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Oct 09. 2021

산정호수에 가을이 오면


산정호수 가는 길은 풍경이 좋아서 드라이브하기 좋다. 호수 주변을 돌다 보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얼마 전에 다녀온 그곳은 아직은 여름 끝자락에 있었다. 하나둘 단풍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모습이 가을이 올 거라 알려주는 듯했다.


좋은 날이거나 힘든 날이거나, 그저 그런 날에도 가끔 산정호수를 찾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수 주변을 걸으며 때로는 수다스럽게 때로는 침묵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말없이 걸으며 풍경에 취하기도 하고 호수를 바라보며 어느 시절 기억이 떠오를 때면 수다로 채우는 시간이 된다.


처음 시작이 언제였을까,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한 곳이었다.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시큰둥했던 처음과는 달리 찾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편안한 휴식을 주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산정호수



명절이 되면 여행하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무슨 복을 타고나서 며느리라면 모두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명절에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집집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명절을 준비하는 풍습도 다르니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부러움이 생기곤 했다.


어릴 때 명절은 철없이 즐겁기만 했었다.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대에 걸쳐서 지내야 하는 제사를 챙기느라 엉덩이 한번 붙일 시간도 없이 보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자식들 입으로 들어갈 먹거리를 챙기느라 바빴을 엄마 모습이 그려진다.


엄마에 비하면 힘들 것 하나 없는 명절이다.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닌데 명절에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맏며느리의 입장이기도 했고 제사는 없어도 가족들이 다 모이는 것이 당연스럽게 여겨졌던 명절에 어딘가를 간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이 마무리되어도 먼 곳에 있는 친정을 가기는 쉽지 않았다. 출근이 기다리고 있어서 명절에 친정을 다녀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렇게 명절 끝에 잠시 짬이 나면 가는 곳이 산정호수였다. 차를 타고 나가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으므로 적당히 드라이브 삼아 나서기 좋은 곳이었다.






이젠, 언제 어디를 가자고 주장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그렇게 부러워했던 명절에 여행을 가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다만, 하지 않을 뿐이다. 명절은 명절다워야 하고 여행은 여행다워야 한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다른 날 중에 여행 갈 수 있는 날은 많다.


어느 때는 편안하게 찾아가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엉킨 마음으로 찾기도 했다. 어떤 마음이라도 다 받아주었다.


잔잔한 호수를 보며 거니는 시간이 좋다.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좋다.  이야기 나누며 걷는 시간이 즐겁다. 잠시 하던 일 멈추고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는 시간, 일상이 여행이 되는 순간이다. 고운 단풍으로 물든 그곳을 거닐고 싶다, 가을이 가기 전에. @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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