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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Oct 15. 2021

둘이 걸어요, 가을이잖아요

가을 산책


사과 하나 물 한 병 챙겨 집을 나선다. 골목을 지나 산 입구까지 걸으며 동네 구경을 한다. 초등학교를 지나며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회색빛 콘크리트가 떠오르는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빨강 파랑 노랑 화려한 색감으로 꾸며진 학교가 예쁘다. 달라진 학교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산 아랫마을이 끝나는 곳에 2층 집이 있다. 대문을 나서면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고  뒤로 돌아서면 산이 보인다.  도시에 살면서 시골의 정서를 담을 수 있는, 이런 환경에서 살면 좋겠다며 부러워한다. 더 많이 부러워지기 전에 산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



오늘은 뭘 먹을까? 먹고 싶은 메뉴를 하나씩 꺼내놓는다. 지난번에 먹은 뼈해장국은 정말 맛있었다. 돈가스도 먹고 싶고 잔치국수도 먹고 싶다. 떡볶이도 먹고 싶고 칼국수도 먹고 싶다. 결론 없이 메뉴만 늘어난다. 산을 오르며 정한 메뉴는 내려오면 바뀌기 일쑤다. 그러니 결정해 봤자 소용이 없다.








외식하는 것에 인색했다. 배달음식은 더더욱 먹지 않았다. 오로지 집 밥이 최고였다. 주말이면 밥을 해 먹는 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주말이 반갑지 않았다. 가끔은 맛있는 음식도 사 먹으며 편하게 쉬어도 좋으련만, 그것이 힘든 사람이었다. 때론 답답하고 힘들었어도 그게 최선인 것처럼 맞추며 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주말 아침이면 나설 준비를 한다.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갈지, 먹고 싶은 것은 뭔지 묻는다. 낯설었던 처음 모습과는 달리 이제는 자연스럽다.  오르는 코스는 달라도 같은 산에 올라 둘레길을 걷고 내려와 이른 점심을 먹는다. 둘이 걸으며 시작하는 주말 아침이 즐겁다.



같은 듯 보여도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이다. 가을이 되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초록으로 물들었던 산은 노랗게 빨갛게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앞만 보며 정상을 향해 오르는 산행과는 비교할 수 없다. 변해가는 나무들의 모습과 주변을 찬찬히 살피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몰랐던 식물을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새로운 식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덤이다.








가을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무엇을 해도 좋지만 특히 걷는 것에 안성맞춤이다. 산책하듯 천천히 걷는 시간은 느긋함을 안겨준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바쁜 일상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여유를 부릴 때는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이 조용해짐을 느낀다.



봄여름과 달리 여유로움을 더 안겨주는 가을날의 산책이 좋다. 인생 시간도 익어가는 가을에 접어든 것일까, 서로 달라 삐걱거리던 감정들도 가을이면 무르익듯 잘 맞춰지는 느낌이다.  나란히 걸을 때는 같이 살아온 세월을 확인하듯 많은 이야기를 꺼내놓기 좋다. 뒤따라 걸을 때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걸어도 좋다. 어떻게 걸어도 불편함이 없다.



익어가는 나이만큼 배려하는 마음도 커지나 보다. 가을 산책길에는 상대방을 챙겨주는 마음도 커진다. 가을에는 누군가에게 함께 걷자고 손 내밀어봐도 좋겠다. 혼자보다는 둘이 걷기 좋은 계절이니까. @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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