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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Dec 28. 2021

서럽게 울고 나서야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얼마 전에 서럽게 울었던 날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 좋게 술도 한잔했던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격하게 몰려왔던 서글픔을 주체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났다. 뭐가 그리 서글펐을까.



멈추지 않는 눈물 탓에 참지 못하고 전화를 했다.  울면서 전화하더니 속상하단다.  받는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어디냐고 묻더니 바로 나와주더라. 평소에 그렇게 빨리 행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처음 당하는 일에 놀라긴 했나 보다.



아마도, 사는 동안 이런 일이 처음이지 싶다. 어지간하면 내색하지 않고 알아서 해내는 성향이라 힘든 일이 있었어도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 말하거나 알게 되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랬었는데 늦은 밤 울면서 전화를 했으니 놀랄 일이긴 하다.



서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억울하다는 감정이 자리 잡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이 서러워지더라. 술기운에 억울해서 서러워진 마음을 분출했던 것이리라. 아마도 가장 만만하고 편하고 다 받아줄 거란 믿음이 있었으리라. 그러니 한 번도 하지 않던 속풀이를 했겠지.







최근 몇 년을 돌아보면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다독이고 참아내며 살았던 시간이었다. 나에게 닥친 상황에 왜 나일까, 란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써 무시하며 보내기도 했었다. 참고 다독이며 잘 지냈다. 많은 일들이 생겨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보냈던 시간, 그럼에도 계속되는 좋지 않은 일들에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보자, 나를 시험하는 듯했다. 참고 다 받아주니 바보로 아는 건가 싶기도 했다. 처음부터 화내고 악을 쓰며 억울하다고 거부했어야 했나 싶었다. 상황은 여전하고 생각만 많아졌다. 억울하기도 했다가 반항심이 생기기도 했다가 포기한 마음이 되기도 했었다.



그렇게 바보처럼 참느라고 보살피지 못한 감정은 차고 넘칠 만큼 쌓였나 보다. 억울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니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만큼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로 버티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서러울 만큼.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을까. 무너진 모습을 보여도 상관없었을 텐데, 왜 그렇게 참고 참았을까.  많은 일을 겪으며 어쩔 수 없는 상황에도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시간, 안면마비로 얼굴이 이상해졌을 때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말았다.








젊은 시절에는 생각이 많이 달랐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만으로 쌓여갔다. 다툼이 싫었던 이유로 참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한 번 두 번 참다 보니 습관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살면서 성격도 변하더라. 젊은 시절 달랐던 부분이 나이 들고 보니 이해 못 할 일이 없다. 함께 보낸  세월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다듬어진 것이리라.



서러움으로 변해서 터지기 전에 감정도 해소시켜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참아서 병이 된 것은 아닌지, 더 이상 바보처럼 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어떤 모습을 하더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처음부터 내 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서럽게 울고 나서야. @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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