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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Dec 29. 2021

겨울, 그땐 그랬었지

겨울 생각


요즘은 겨울이 되어도 동상에 걸린 사람이 흔하지 않다. 주변에서 만나기 힘들지만, 혹시 추운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동상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동상에 걸렸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평범한 일상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일이 되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밖에 나가 노는 것이 일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밥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나가서 놀만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추운 날씨에 온몸이 꽁꽁 얼 때까지 밖에서 놀다 보면 어느 순간 손발이 동상에 걸려 고생을 하곤 했다.



추운 곳에서 놀다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증상으로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동상에 걸렸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자주 걸렸을지 짐작이 된다. 온몸이 추웠다가 따뜻한 방에 들어오면 손발이 빨갛게 변하면서 저리듯이, 바늘로 찌르듯이 찌릿찌릿한 느낌이 찾아온다.



금세, 좋아지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는 상당 기간 고생하기도 했다. 동상이 회복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 나가 노느라, 추운 환경에 노출되는 시간이 반복되면서 갈수록 심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겨울이 지나야 동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겨울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어느 겨울방학이었다. 여전히 나가 놀기 바빴던 시간이었고 여지없이 동상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차가운 곳에서 놀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가렵기 시작하면서 동상의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곤 해서 괴로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삼촌이 동상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눈이 소복이 내린 날 아침이었다. 일찍 일어났지만 놀러 나갈 수가 없었다. 삼촌이 동상을 물리쳐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처방은 간단했다. 맨발로 눈 위를 걷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적응이 되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눈 쌓인 동네를 맨발로 뛰어서 한 바퀴를 돌았다. 집으로 돌아와 대야에 찬물을 받아서 발을 담그라고 했다.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눈 위를 걷고 뛰어서 빨갛게 언 발을 차디찬 물에 담갔는데 그 물이 아주 따뜻하게 느껴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덕분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후로는 동상으로 고생한 기억이 희미하다. 나가 놀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때의 처방으로 치료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맨발로 눈을 밟는 일이 처음에는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일인데도  기분 좋은 경험으로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처방이었지만, 삼촌은 나름 어디선가 듣고 알게 된 것이었을 테니 탓할 수는 없겠다. 생소한 처방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문을 나서면 모든 곳이 놀이터였다. 수확이 끝난 논에는 벼를 베고 남아있는 밑동이 있다. 눈이 소복이 쌓여있을 때는 모르다가 햇살이 비치어 눈이 녹기 시작하면 논이 질퍽해진다. 논에서 뛰어놀다가 벼 밑동에 걸려서 넘어지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도 손 야구를 하며 놀았고 뛰다가 지치면 처마 밑 고드름을 따서 고드름 치기를 하면서 놀기도 했다. 무슨 놀이를 만들어서라도 노는 일에 열심이었다.



어릴 때는 눈이 자주 왔고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렸다. 마당 양옆으로 쓸어낸  눈이 상당히 높게 쌓였고, 아이들은 또 쌓아놓은 눈으로 언덕을 만들어 미끄럼을 타기도 했고 작은 동굴을 만들어 놀기도 했었다. 눈이 그치고 햇살이 비치는 날이 계속되면 마당에서 눈이 녹는 모습을 보며 놀았다. 눈이 녹아 질퍽해진 마당을 첨벙첨벙 걸어 다니며 놀다가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다.



긴 겨울방학이 있었던 겨울은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환경이었음에도 해맑았다. 멋진 장난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련된 놀이는 아닐지라도 너 나 할 것 없이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어릴 적 겨울을 생각하면 즐겁다. 포근해진다. 손발이 꽁꽁 얼어도 추운 줄 모르고 신나게 뛰어놀던 우리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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