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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Dec 31. 2021

아쉽지 않아, 안녕 2021

2021년을 보내며.


시들었지만,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꽃을 보며 내 모습이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메말라서 곧 바스러질 만큼 약해졌지만 아직은 꽃으로 남아서 보여줘야 된다는 듯이, 누가 건들지 않고 버리지 않는다면 조금 더 주어진 임무를 하겠다는 듯이, 비록 시들었지만 그래도 꽃이라는 듯이.



지나고 보니 그렇다. 순간순간 힘들어 무너지고 싶어도 아직은 해야 할 일이 있고, 지켜야 할 일이 있어서 놔버리지 못하고 내 할 일을 다 해내겠다는 듯이 그렇게 한 해를 보냈다. 이미, 내 몸이 온전하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라면 해야 하지 않겠나.






2주에 한번 항암치료를 하시는 멀리 계신 엄마한테는 마음만 있을 뿐 몸이 따라주지 못해서 죄스러움이 늘어갔다. 한 가지 일을 해결하고 나면 다녀와야지 해보지만, 늘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어느새 한 해가 다 가버렸다. 형제간에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겠지만, 그 와중에도  자식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에 울컥했던 순간을 자주 마주쳐야 했다.



가까이 계신 시부모님, 모든 일을 지켜봐야 했고 수시로 살펴야 하는 이유로 힘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상태가 계속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속상하고 마음 아팠던 시간, 긴 시간 굳건하게 이겨내고 회복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러운 시간이었다.



젊은 시절의 고생스러웠던 시간이 나이 들어 삶의 흔적으로 찾아오는 것인지 건강하셨던 분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안쓰럽고 짠하고 마음 아프고 순간순간 울컥울컥 억울한 설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 모든 순간,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더 깊게 돈독함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예전보다 한층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기분은 아닐 거라 믿는다. 회복되면서 웃음을 찾고  자주 하시는 말씀이 이젠 네 몸 챙겨라, 하신다. 당신 한 몸 챙기기도 버거웠던 시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챙길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애썼다, 고맙다, 네 덕분이다,라고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라 여기지 않으시는 그 마음이면 족한 거 아닐까.








살면서 몸이 아픈 것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마음을 다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원치 않았지만 나에게 찾아온 안면마비는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마음의 병이 생겨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갔다. 한번 상처 입은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아픈 마음으로 많은 일을 겪으며 무의식적으로 일상을 이어나갔다. 돌아보면, 많은 일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오히려 나를 의식하지 않은 체, 닥친 현실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어 고마워해야 할 듯하다.



변화된 얼굴을 익숙해진 마음으로 마주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살면서 올해만큼 험난했던 한 해가 있었을까 싶지만, 사는 동안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생각도 해본다.



지난 시간 잘 견뎌낸 것처럼 앞으로 다가올 시간도 애쓰다 보면 어느새 회복된 시간도 맞이하리라. 올해가 가는 것이 아쉽지 않은 것은 힘들지만 주어진 시간을 후회 없이 보냈기 때문이리라. 우리 모두 좀 더 나은 한 해를 맞이하길 기한다. 안녕, 2021.@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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