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만난 초록빛 새싹이 유난히 시선을 끌었습니다. 봄도 아닌데 비 온 뒤 나무 옆구리에서 새싹이 나오고 있더라지요. 파릇파릇한 나뭇잎을 보니 뭔가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촉촉하게 물먹은 나무 옆구리에 자리 잡은 새싹은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까요?
코로나 19로 인해 거의 모든 일상이 방해를 받고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생활한 지 오래입니다. 예전의 일상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예측은 현실을 더욱더 우울하게 만듭니다. 앞으로의 일상은 늘 이렇게 불안함과 공생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제는 자영업을 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몇 달째 마이너스인 사업장을 계속 유지해야 할지 접어야 할지 고민이 많더군요. 현재 사업을 접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한다 해도 좋아질 기대감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더군요. 다른 친구는 직장인 배우자의 월급을 받아 사업장 월세를 내고 있다고도 하더군요.
직장인도 코로나 19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요. 회사가 힘들어지니 직원인 입장에서 월급이 제대로 나와준 것만도 감사할 따름이겠습니다. 활동량이 줄고 사람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운 직장생활입니다. 누구와 만나 밥 한 끼 먹는 일이 힘든 현실이 되었습니다.
전업주부는 쉬울까요? 가족 모두가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가족들 챙기는 주부의 어려움도 크겠습니다. 삼시세끼 챙기는 일도 힘들 테고 주부생활을 하며 맺어진 관계의 활동이 끊어진 일상으로 빈 시간을 채우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
학생들은 쉬울까요? 학교를 가지 못한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으며 생활하는 그 시간도 쉽지는 않겠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없어진 요즘 학생들의 현실이 짠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노는 것도 쉽지 않은 날들입니다.
많은 것들이 제한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참아야 하고 서로를 위해 방역지침을 지켜야 하고 이렇게 제한적인 현실을 견디며 이겨내야 합니다. 이제는 식당에서 밥 먹는 것까지 제한하는 불편한 현실, 어쩌다가 이런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출근길에 만난 가녀린 새싹이 우리의 불안한 현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에서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새싹의 운명이 코로나 19에 감염되어 언제 격리될지 모르는 우리의 불안한 현실과 비슷해 보입니다. 누가 감염자이고 누가 감염되어 돌아다니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감염이 무섭습니다.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괴롭습니다.
코로나 19 이전에는 나무 옆구리에서 자라는 새싹을 보고 희망을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불안함이 전해져 옵니다. 같은 새싹을 보며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와 닿네요. 불안한 현실이 그대로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