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미 생각

바람난 여자

바람이 과했을까.. 나를 찾고 싶었을 뿐~

by 단미


모든 것이 재미없고 시들해졌다.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는데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틈새 없이 매인 몸으로 무엇을 도전하고 시작하기에는 걸리는 것이 많았고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다가 포기하고 하다가 주저앉고

엄마 자리를 지키느라

아내 자리를 지키느라

직장인으로 열심히 사느라

늘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버거웠고

포기하기가 쉬웠던 시간들이었다.


핑계였는지도 모르겠다.

부딪히며 과감하게 실천하지 못해 불편한 마음을 달래는 핑계를 찾기 바빴는지도.

그때는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보다 앞서 대기하고 있던 나의 위치가 늘 먼저였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못하고.


나는 무엇을 시도할 때마다 주저앉히는 그때그때의 상황들이 많은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뭐가 다를까, 나와 그 사람들의 다른 점이 무엇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부러운 만큼 심사가 꼬이기도 하고 얄미운만큼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분명 나와 같은 장애물들이 존재할 텐데 꿋꿋하게 해쳐나가는 그 용기를 보며

나는 늘 기죽고 자신감을 잃은 패배감을 느껴야 했다.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하는 엄마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우고

바쁜 아내로 집안일을 잘 꾸리며

직장인으로도 내 자리를 잘 지키며 능력 발휘하면서

스스로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앞을 향해 정말 열심히 보낸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 정작 내가 없었다.


난 어디에 있을까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런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나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널 찾아. 하고 싶은 일을 해. 그게 무엇이 되었든 온전하게 너를 위한 시간을 가져.

누구보다 간절하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어느 봄날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왔다.

봄바람과 함께 내 마음에도 바람이 일었다.

바람이 났다는 표현이 맞겠다.






봄바람 따라 산에 올랐다. 연초록으로 갈아입은 봄날의 산은 정말 예뻤다.

싱그러웠다. 내 마음에 생기가 차 올랐다. 이렇게 좋을 수가~ 행복했다.

주말마다 산으로 향했다. 산에 오르는 것이 좋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행복했다.

행복이 행복만 주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늘 양면을 선물하는 거 같다.


재미없고 시들해진 일상의 시간들이 활력 넘치고 생기가 돋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좋았던 건 나 혼자였다.

일하는 엄마는 산에 다니는 엄마로 변하고 바쁜 아내는 산에 빠진 아내로 바뀌었고

성실하던 직장생활은 주말마다 다녀온 산행의 여파로 피곤한 시간을 선물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늘 행복했고 즐거웠지만, 그 행복과 부딪히게 되는 갈등은 나를 힘들게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산에 다니는 엄마를 이해해주었고,

직장에서의 피곤함을 덜기 위해 좀 더 편한 산행으로 선택하여 조절하면 되었다.

한 가지, 산에 빠진 아내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반쪽짜리 행복이었다.

산에 다녀오는 날이 늘어날수록 갈등이 깊어졌다. 서로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산에 오르는 행복이 커지면 커질수록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나는 나대로 이해 못해주는 그 마음이 야속했고

그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서로에게 양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즈음...

서로에게 배려 없는 모습에 벌이라도 주는 듯,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꺾였다. 한 치 앞을 볼 수도 없으면서 그렇게 어리석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아픈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온전하게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자 발버둥 친 결과가 처참했다.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행복한 산행을 방해하던 그 사람도 무너졌다.

그렇게도 양보 없이 싸워야 했던 일이었을까,

모든 게 의미를 잃었다.





시련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준다고 했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그렇게 위로를 해주었다.

당해보라지~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주는 고통이라서 괜찮은지.

괜찮지 않았지만, 또다시 일어서야 했다. 난 나를 포기할 수 없었다.


바람난 여자는 돌아올 수 없다고 하더라만,

그 마음에 다시 부채질을 하고 싶어 졌다.

다시 도전했다. 죽을 만큼 힘들더라도 해보고 싶었다.

일하며 가정에 충실하기를 바라던 그 사람도 더 이상 막지를 못했다.


시들한 일상이 봄바람에 되살아났으나

치열했던 여름날을 보내면서 사정없이 였다가

가을을 맞아 다시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온전하게 나를 찾고 싶던 마음은 아픔 속에서도 죽지 않았고

지금도 나는 산과 행복한 연애 중이다.


어느 봄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산에 오르는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쓰기는 초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