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
예정된 일이 있는 것도 아닌, 휴일 오후다.
집에 있으면 흐지부지 시간을 흘려보내고 무료하게 보낸 시간은 지나고 보면 늘 아쉬움을 남기곤 한다.
별일 없으면 집에서 글쓰기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휴일을 보낸다. 그렇게 보내는 것이 일상을 방해받지 않고 쉬는 방법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카페에서 글쓰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본다. 카페에 갔을 때 노트북을 열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 글쓰기이거나 과제이거나 정보를 찾거나, 어떤 것을 하더라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그게 될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조용한 공간을 선호하는 나의 짧은 생각인 것이다.
비도 오고, 별일 없는 휴일오후에 그 어수선한 공간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카페에서 글쓰기 도전해 볼까?"
"같이 가줄까?"
걷고 싶었던 남편은 목적지를 둘레길에서 카페로 방향을 바꾼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우산을 쓰고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직장이 아닌 집 근처에서는 어느 한 곳을 정해놓고 카페를 다녀본 적이 별로 없다. 단골카페가 있을 리 없다. 어디가 좋은지 알지 못한다. 글쓰기를 위한 카페를 찾아 처음 나서는 길이다. 조용하면서 공간이 좀 넓어야 하고, 음악은 시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방문했다. 비 오는 날이지만, 공간이 넓지 않은 카페는 만석이다. 두 번째 장소로 발길을 돌린다. 오래 앉아있기에는 부담을 느낄 만큼 너무 좁다. 세 번째로 향한다. 역시, 많은 사람이 차지하고 있다. 카페에서 글쓰기 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고? 흔하디 흔한 것이 카페라고 생각했다. 유명카페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카페를 이용하고 있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카페에서 글쓰기 첫 도전을 포기하고 집으로 갈까 고민하는데 이왕에 나왔으니 다시 찾아보자는 남편의 말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다. 그렇게 다시 발품을 팔아 아주 좋은 곳을 만났다. 적당히 넓은 공간, 시끄럽지 않은 음악과 북적이지 않을 만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적당한 수의 사람들, 딱 좋다.
카페에서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말에 기꺼이 둘레길을 포기하고 함께 나서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몇 군데를 지나쳐서 결국 맘에 드는 곳을 찾은 것이다. 조건이 까다롭다며 투덜거리는듯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참아준 덕분에 결국 맘에 쏙 드는 곳을 발견하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나는 글쓰기 하면 자기는 뭐 할 거야?"
"아들이 추천해 준 책 읽지 뭐."
책을 잘 읽지 않은 남편이 변했다. 책을 읽겠다고 카페로 함께 따라나섰다. 따로 좋아하는 일 하며 보낼 수도 있는 휴일오후, 기꺼이 시간을 함께 해준 것은 분명 젊은 시절과 다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을 먹는 것은 아닐지. 부부는 같은 시간을 함께 먹고 살아온 것일 테다. 나이 들면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함께 먹은 시간을 되새기며 추억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리라. 공유하는 시간 속에 많은 것이 담겨있겠지, 사람이 변할 만큼.
카페 가는 것을 즐기지 않아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도 기꺼이 동행하는 것은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더 많은 것을 함께하며 살아가겠지. 같은 시간을 먹고 나누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