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화가 꽤 있었다. 뭔가를 얘기했는데도 기억하지 못하고 때가 되어 닥치면 언제 얘기했냐는 듯이 반응한다.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이 사람 맥 빠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굳이 핑계를 찾자면 바빠서 정신없었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거나 중요한 일이 아니어서 건성으로 들었을 것이다.
중요한 일은 메모를 하고 기억하려고 애쓰는 과정이 있으니 대부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소하게 주고받는 대화는 본인에게 필요하지 않거나 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건성으로 주고받을 때도 있다. 그런 경우 아주 사소한 일로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경험은 젊은 시절에도 많았다. 어쩌면 나이 든 지금보다 더 자주 그런 일이 발생했었던 거 같다. 당장 나한테 필요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가볍게 듣고 흘리게 되는 경우, 그런 일은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그랬었고 지금은 함께 변해가는 거 같다.
"물에 빠진 고기 안 먹으니까 숯불구이집 갈까?"
"오~ 그걸 기억해 냈어~ 하하."
물에 빠진 고기란,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돼지고기나 뭇국에 들어있는 소고기라든지, 아무튼 국물에 빠진 고기를 말한다. 그렇게 빠진 고기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에 빠진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몇 번을 얘기해도 늘 잊어버리고 김치찌개 먹으러 가잔다. 잊고 싶은 것이었는지 신경 쓰기 싫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요즘은 먼저 거른다. 주말이면 산에 올랐다가 하산 후 식사하러 갈 때면 김치찌개보다 구워 먹을 수 있는 고깃집을 찾아간다.
"지금 바쁜 시기지? 바쁜 거 끝나면 단풍구경 가자~"
"오~ 이제 바쁜 시기도 알고~~ 대단해요~ 하하."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결혼전이나 후에도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언제 바쁘고 한가한지 알만도 한데, 매년 바쁜 시기가 되어도 모른 체하기 일쑤였다. 이 또한 그런 날이 싫어서 알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매년 다시 말하고 일깨워줘야 했다. 그런 일상이 어느 때부터인지 미리 알고 챙겼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에 비해 나이 들었다고 특별히 달라진 일상은 아니다. 어쩌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이 아닐까? 함께 해온 시간을 돌아보니 고생한 것도 알고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런 마음이 쌓이고 보니 자연스럽게 상대의 말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내 말 안 들어준다고, 내가 한 이야기는 다 어디로 갔냐며 언짢아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나 또한 사소한 대화도 새겨듣게 되더라. 일상에서 나누는 모든 것이 사소할 수 없을 텐데, 어쩌면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많은 시간을 허투루 무심하게 보낸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