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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Oct 19. 2020

고기 잘 구워주는 남자

때론 애틋하게, 때론 고맙게



이 정도면 돼?라고 묻습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입이 불편한 저를 위해 고기 크기가 적당한지 묻는 거였습니다.


멋쩍은 듯한 표정이라니 참,

그 말이 그렇게도 쑥스러울까요?






고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왜냐고요? 맛있으니까요~


제가 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스물세 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고기 맛을 늦게 알아서인지, 그때부터 맛보기 시작한 고기는 최고의 음식이 되었습니다.


특히, 소고기를 좋아하게 되었건만,

비싼 소고기를 매일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돼지고기로 대신하여 즐겨먹게 되었지요.

어쩌다 소고기를 먹게 되는 날은 정말 행복해하기도 했답니다.


결혼 전에는 매일 삼겹살 데이트를 즐겼던 기억이 납니다. 퇴근 후 같은 시간에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인 삼겹살을 먹었던,

날마다 먹어도 맛있고 좋았던 시간이었지요.

삼겹살을 먹고자 했던 것인지 데이트를 하러 만났던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지요.


잘 구워진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시간이 되어주곤 했지요.








몸이 부실해진 제가 걱정이 되긴 했나 봅니다.

종일 잠에 취해서 하루를 보냈던 주말이었습니다.

정신을 못 차리고 기운마저 없는 마누라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었을까요?


기력 보충하러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갈까 말까 잠시 갈등이 생겼습니다.

입맛도 없고  밖에 나가기가 귀찮기도 하면서

누가 해주는 맛있는 밥이 먹고 싶기도 했거든요.


안 간다고 하면 성의를 무시하는 거 같고

가자니 힘들고 귀찮은 마음이 앞서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고기 좋아하는 마누라를 위 그 마음이 고마워서 따라나섰습니다.


고기를 굽습니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기를 먹기 좋을 만큼 잘라서 앞으로 놓아줍니다.


"이 정도면 돼?"

"응, 딱 좋아!"


"많이 먹고 힘내"

"응, 알았어"


고기를 굽고

고기를 먹습니다.

그저 말없이.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니,

이런 외식자리에도 둘이서 가는 날이 많습니다.

뭐가 바쁜지 각자 시간 보내느라 가족이 모여

오붓하게 식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실해진 몸이 걱정되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커지는 거 같습니다.


함께 해온 세월이 안쓰러운 걸까요?

함께 해줘서 고마운 것일까요?


고기 잘 구워주는 남편입니다.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고기 구울 때는 제 편이 되어주니 고맙기도 하더라지요.


때론 애틋함으로,

때론 고마운 마음으로  사는 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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