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능력을 보여주고 말았다. 여기서 능력이란 상대방이 나를 보고 판단해서 하는 말일뿐 실제로 내가 어떤 능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통화하는 모습만 보여줬을 뿐.
결산업무로 한창 바쁜 시기였다. 늦은 퇴근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폰을 보니 반가운 이름이다. 나이 들어서도 나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다. 또래 친구들이 말하기를 나이 들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능력자라 하던데 그 말에 의하면 전화한 친구와 나는 능력자가 되는 거다.
아무튼, 친구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통화를 시작했다. 친구지만 늦은 시간이라 미안하다고 말한 후 전화한 이유를 말했다. 업무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는데 해결되지 않아서 실례인 줄 알면서 했다고 한다. 다음날 출근해서 처리해야 할 일인데 고민하다 전화를 했다며 궁금한 내용을 물었다.
결산 마무리작업과 결산 후 청산작업에 대한 질문이었다. 세부적인 회계처리과정을 묻고 답하느라 1시간이 넘도록 통화가 계속되었다. 해결되지 않았던 회계처리방법과 다음날 해결해야 할 일에 대한 조언까지 듣고 업무적인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제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남편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 뉴스를 보다가 통화한다고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니 궁금했나 보다. 거실과 방을 왔다 갔다 하며 무슨 통화를 하는지,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긴 시간 이야기하는지 자꾸만 기웃거린다. 무슨 일 있는 거냐며 손짓과 입모양으로 묻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통화내용을 듣고 서 있기도 한다.
통화를 끝내고 나오니,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묻는다.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통화를 하느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겠어,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하니 한마디 덧붙인다.
"오~ 대단해, 다시 봤어~"
"뭐가?"
"전문가처럼 보였어. 허허~ 그런 모습 처음이야"
"그래? 하하~"
그렇다. 업무적인 내용으로 통화하는 모습을 보더니 사람을 다시 보더라. 능력 있는 여자였어~ 능력자였어~ 다시 봤어 등등..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기회 될 때마다 꽤 여러 번 반복되는 반응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직장에서 하는 일을 집으로 가져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래처와 통화하는 일도 거의 없으니 가족이 업무처리하는 나의 모습을 봤을 리 없다. 한 시간 넘게 상담하는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처럼 보였나 보다.
나에게는 늘 하던 일,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고 그것을 수월하게 해결하는 과정은 능력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모습이 되기도 하나보다. 평소에 늘 하던 일로 친구와 수다 떨듯 통화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면, 나이 듦과 함께 자연스럽게 스며든 노련함이 능력으로 둔갑해 보여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