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것은

by 단미

오십을 넘기며 예상치 못하게 훅 찾아든 것은 ‘여유’라는 단어였다. 맞이할 준비도 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많은 시간이 내 앞에 찾아왔다. 나와 비슷하게 나이 든 사람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맞이하고 보내는지 궁금하다. 항상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갈 줄 알았다. 오랜 시간 그렇게 보냈으니 여유로운 일상보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이 더 익숙하다.




워킹맘으로 살며 쉼 없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젊었으니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 나 자신을 돌보기보다 아이들이 우선이었고 사춘기를 맞아 예민한 시기에는 염려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속으로 동동거리며 살았다. 아이들이 자라고 성장하는 만큼 나 또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씩씩하게 워킹맘의 삶을 유지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뚝 끊어지는 고무줄처럼 아들딸과 보내는 일상이 끝나 버린 듯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아들딸이 독립하고 나니 남편과 둘이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멍한 시간이 당황스럽다. 퇴근 시간이 되면 부랴부랴 서둘러 집으로 향했던 발걸음이 급할 거 하나 없이 느긋해졌다. 아니 오히려 퇴근하면 뭘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녁 먹고 산책을 나선다. 동네 한 바퀴 돌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이런 시간이 올 줄이야, 이렇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다니. 공허한 마음과 달리 바람 쐬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집으로 돌아와 TV를 켠다. 드라마, 뉴스, 예능 등 많은 채널이 있지만 어느 프로그램 하나 눈길을 끌지 못한다. 하릴없이 노는 시간이 이렇게 무료할 거라 짐작하지 못했다. 퇴근 후 혼자 있어 봤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다. 주말에 어디든 가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쉬었으면 좋겠다고 원했던 적이 있다. 현실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바라기도 한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젊은 날에는 왜 그리 쉽지 않았을까.




나이 드는 게 뭐 어때서? 라며 할 수 있는 일을 더듬어보니 여전히 충분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오히려 젊은 시절 못했던 일을 과감히 도전하며 해내기도 한다. 마음먹으면 못 할 일이 없다. 나이탓하며 도전하지 않는 것이 문제지.


어쩌면 나이 든다는 것은 새로운 시간을 배당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누리지 못한 시간을 보상받는 것일 수도 있겠다. 현재 나에게 맞는 선물인지,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는지 살피게 된다. 분명 원했던 선물이었는데 느닷없이 받게 되었을 때의 부담감이랄까, 선뜻 받기가 쉽지 않다.


언젠가 맞이할 시간이었다. 분주한 일상을 보내느라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뿐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런 시간이 주어졌을 때 뭘 할 수 있을지, 뭘 할지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갑자기 쳐들어와도 놀라지 않을 테니. 요즘 늦게 시작한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 찾아 배우며 앞으로 맞이할 시간을 준비해야겠다. 더 많은 시간에 멍하고 당황스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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