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미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미 Jan 09. 2021

나에게 보내는 편지

단미에게

나에게 보내는 편지              



참 열심히도 살았다. 유난히 발걸음이 빠른 편이었지.  아마도 동동거리며 빨리빨리 해내야 하는 일상이 습관이 된 것이라 생각해. 요즘도 가끔, 빨리 걷고 있는 것을 느끼며 의식적으로 천천히 가기도 하더라.


빨리 걷는 습관은 아주 오래전에 생겼지.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던 시절, 아침 시간은 정말로 정신을 쏙 빼놓는 시간들이었잖아. 아이들을 챙겨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해야 했고 퇴근 후에 또다시 어린이집에 늦지 않게 가야 했던, 거의 매일이 뛰다시피 했던 아침저녁이었잖아.


아마도 그때부터 빠른 발걸음이 시작된 게 아닐까? 숨 가쁘게 하루하루 살아냈던, 그야말로 살아냈던 시간들이었잖아.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거 같지?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대견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바쁘게 보낸 거 같다. 정말 숨차게 보낸 시간들로 기억된다. 고생했어.


아이들이 자라면서 엄마 손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하고 이제는 나의 삶을 찾아보자, 생각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마음먹고 생각한다고 하고 싶은 대로 된다면 재미없다는 듯, 그 후로도 여전히 나의 손길은 필요했고, 아이들 말고도 시댁으로 친정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더라.


나부터 챙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보기도 했지만, 현실은 늘 뒷전이었던 시간들이었어. 바보 같아서 그런 건지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그런 건지 항상 나를 챙기는 것은 뒷전이었잖아. 아이들을 위하고 부모님을 위하고 남편을 먼저 챙기는 시간으로 보내다 보면, 나를 위한 시간을 찾기는 쉽지 않았고. 또 그때는 그렇게 사는 게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졌지. 사는데 바빠서 불평을 느낄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었던 거 같아.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날 아픔이 찾아왔잖아. 한 번 아프고 나니 그제야 내가 보인 거야. 다 소용없다는 생각,  내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나를 깨우치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나를 챙기려고 하니, 그게 쉽게  되겠니?


긴 세월 다져진 시간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란 거 알잖아. 나도 쉽지 않았고 가족들도 쉽지 않았지.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당황스러워했잖아. 당하는 입장에서는 갑자기 변한 것처럼 느껴졌겠지.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으니 생각에도 변화가 찾아왔는데, 가족들이 그 변화를 이해하면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문제였어. 나는 변하고 싶은데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서로 다른 생각으로 부딪히기 시작했잖아. 나를 찾으려고 하니  또 다른 시간들이  힘들게 했지. 그럼에도 조금씩 조금씩 알게 모르게, 끊임없는 노력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는 했어. 애썼다.


나부터 챙기자고 다짐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온전하게 다 뒤로 미루고 내가 먼저는 되지 않더라.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니 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지는 않아.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은 부분 나를 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다행으로 생각해.


백세시대라고 하면, 이제 반평생을 살았네. 전반의 반평생은 남들을 위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으니, 후반의 반평생은 나를 위해 살아보는 거 어때? 온전하게 내가 먼저라는 생각으로, 나를 먼저 챙기는 시간으로, 누가 뭐라고 해도 나를 소중하게 챙기며 살아보자.


이 세상에 딱 한 사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잖아.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거 아니겠어? 지금부터는 내가 행복하도록, 누구보다 내가 먼저 행복해지는 삶을 살아보자.


새해는 좀 더 건강해질 수 있게 몸도 마음도 튼튼하게 다져보자.

그럴 수 있지?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책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