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4살 된 딸은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딸이 예뻐서 웃고 계시네요. 기분 좋은 아버지는 딸에게 사탕을 쥐여주네요.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가 예뻐한다는 것을 느꼈던 거 같습니다.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것이 다입니다. 기억 하나 심어주고 4살 된 딸을 두고 먼 길을 떠나셨어요. 우리 엄마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우리 엄마, 존경스러운 우리 엄마. 엄마의 젊은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쓰리고 아파집니다. 그리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와 앞을 못 보신 할머니 그리고 10살 7살 4살 1살이던 4남매는 젊디 젊은 엄마에게 주어진 기막힌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게 받아 든 엄마의 현실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되지 않습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가난이 싫어서 얼른 커서 집을 떠나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할까, 왜 남들처럼 잘 살지 못할까,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는 현실은 보지 못한 채,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냥 울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 아팠을지 그때는 엄마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철부지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꼬물거리던 자식들은 다 자라서 성인이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위해 서울에 자리를 잡고 지내던 어느 날 엄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때 홀가분해하시던 엄마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다 갚았다"
"뭘 다 갚아요?"
"니 아버지가 남겨놓은 빚, 이제 다 갚았다" 하십니다.
그랬나 봅니다. 젊은 나이에 과부라는 타이틀만 남겨준 것이 아니고 부양할 가족과 빚까지 떠 안기고 떠나셨나 봅니다. 어린 자식들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지요. 엄마는 날마다 죽어라 일하는데 왜 가난한지, 왜 늘 돈이 없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린 자식들에게 그런 사실을 얘기할 수도 없었던,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었던 젊은 시절 엄마의 현실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아버지가 남긴 흔적을 지우는데 2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지키느라 고달픈 시간을 말없이 받아들이고 지켜낸 세월입니다. 그렇게 지켜낸 세월인데요, 자식이 아프니 잘 먹이지 못한 당신 탓이라고 미안해합니다. 생명줄을 잡고 살아온 것이 용하다 싶을 만큼 팍팍했을 시간, 자식이 짐이 되었을 그 시간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자꾸 미안해하십니다.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엄마의 시간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못 살겠다고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뿔뿔이 흩어져 그리움으로 뭉쳐진 원망을 내뱉으며 살아가는, 상처 입은 4남매가 되지 않았을까요. 가난했지만 따뜻하게 품어 준 엄마가 고맙습니다.
먼 훗날 알게 된 아버지가 남긴 빚은 20년의 세월이 필요할 만큼 대단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혼자 살아내야 하는 엄마의 세월 속에서 그만큼 무거웠나 봅니다. 떠안은 빚을 다 갚고 후련해하시던 엄마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도는듯합니다.
그렇게 고달프게 살아야 했던 시간을 마감할 수 있었고 이미 다 자란 자식들이지만, 그때부터 마음껏 베풀어 주었습니다.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일하고 자식들을 위해 썼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엄마를 위한 시간으로 사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