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처럼, 또다시 그럴지라도
저한테 왜 이러세요?
중증 만료 전 검사를 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며칠 전 또다시 혈변을 쏟았다. 빨갛게 변해버린 변기통을 보며 놀랐던 기억,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날 아침이다. 4년이 지나 안심하고 있어서 다시 일깨워 주는 것이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잘 견디었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라고.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화장실에 갔다가 아무런 증상도 없이 혈변을 쏟아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왜 그럴까? 의문을 가지고 출근을 하고 평소처럼 일하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을 맞았다. 어제와 똑같이 혈변을 쏟아냈다. 출근을 미루고 병원으로 향했다. 며칠 후,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에 앉아서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기다리는데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자꾸 모니터만 바라보며 살핀다. 뭔가 잘못되었구나 싶은 싸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한참을 머뭇거린 후에 내려진 진단은 암이었다. 대장암, 이게 무슨 일이지?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대장암이라며 바로 입원을 권유했다.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정신을 차렸다. 왜 나 인지 원망은 뒤로 하고 입원을 하기 위해 바쁜 일을 처리하고 주변을 정리했다. 치료의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다시 출근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대신해 처리할 수 있도록 마무리를 해야 했다. 그렇게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입원을 했다. 여러 가지 검사와 진료 후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아직도 생생한 수술실의 서늘한 느낌과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하던 때의 기분은 지워지지가 않는다. 수술만 하면 끝나는 줄 알았다. 수술만 잘되면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암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수술 후의 생활이 더 힘들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돼버렸다.
수술 후에 찾아올 수 있는 일들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도 수술만 하면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만 헀었지 그 외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수술은 엄청난 변화를 안겨주었다. 체력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고 밥을 먹는 것이 고역이었다. 쌀밥을 좋아한던 밥순이가 밥 한 공기를 먹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등산을 하며 삶의 활력을 찾고 산에 오르는 일이 일상의 행복이었던 지난 시간들이 너무나 그리웠다. 등산은커녕 지하철을 타는 일마저도 식은땀이 줄줄 흐를 만큼 힘겨웠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일상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우울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기다려준 직장에 복직을 해야 했다. 걱정이 앞서고 갈등이 생겼다. 이렇게 엉망이 돼버린 몸으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 다시 출근을 결심했다. 두배의 시간이 걸려 출근하고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은 쭉쭉 빠지고 힘겨운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일하며 보내는 시간이 감사했다.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겪으며 가장 힘든 것이 혼자 겪는 시간이었다. 누가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같이 느낄 수도 없는 과정을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이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우울했다. 힘내라는 주변의 격려의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수술 후에 상실된 기능으로 인해 찾아오는 마음의 상처에 대해 누군가 한 번이라도 설명을 해 주었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른 체 준비 없이 맞이하게 된 정말 힘든 시간들을 일하며 위로받기 시작했다.
수술 후, 남들은 알 수 없는 불편함을 참아가면서 원래의 일상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산을 다시 오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산에 오르는 것에 도전했고,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쓰기 싫어서 잠시 놓았던 글쓰기도 시작했다. 변화된 몸의 불편함을 잊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날렵하게 오르던 산행이 거북이 산행으로 바뀌었을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랐다. 내 안의 쌓여 있는 속상함 들은 글로 털어내며 위로를 받았다. 뭘 하든 긍정적이었던 내가 수술 후에 엄청나게 변해버린 모습에 한없이 작아졌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다시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복직을 기다려준 회사에 보답을 하고 싶었고 행복을 안겨주던 산행을 포기할 수 없었고,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 글쓰기도 계속하고 싶었다.
나의 모습, 나 다움을 찾기 위해 애쓴 지난 날들, 완벽하지는 않아도 지금 모습 그대로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가고 싶다. 산을 좋아하고 즐거운 글쓰기를 하며 나에게 주어진 일을 야무지게 해내는 것, 4년 전 그날처럼, 또다시 그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받아들이고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 예전의 온전한 내 모습이 아닐지라도 달라진 모습 또한 나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