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렇게 둥근 모양이 됩니다.

by 미미빵집

몇 달 전 아빠는 사진 두 장을 가지고 왔다. 사진 속에는 넓고 푸른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아빠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엄마는 사진이 잘 나왔다며 눈에 띄는 곳에 붙이자고 하였고 그렇게 사진 두 장은 창문 옆 공간에 붙여졌다.

며칠 전 우연히 창문 쪽을 바라보다 빛이 바래버린 아빠의 사진 두 장을 발견했다. 아빠도 그 사진을 보며 "그 사진 참 잘 나왔는데. 빛바래 버리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어놓을 걸" 이라며 아쉬워했다.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바라보다 사진 속 아빠의 형상이 전보다 더 희미해져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빛바랜 사진이 그렇게 점점 흔적이 되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세월처럼 보였다. 한순간 아빠의 세월이 겹쳐졌고 깊고 잔잔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빠는 어느 날 밤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죽으면 우리 두 딸들은 어떻게 살아가지 라는 생각. 그렇게 갑작스럽게 든 생각으로 하룻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벌어지지 않은 일은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 쓸데없는 걱정으로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던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그랬다고 한다. 어두운 밤을 밤보다 더 어두운 것들로 채웠다고 한다.


교직 생활로 오랜 시간을 보낸 엄마는 곧 퇴직을 한다고 했다. 딸이 등교할 때마다 엄마도 같이 학교에 출근을 했고 그렇게 딸의 모든 학교생활 옆에는 엄마의 학교생활도 함께였다. 엄마는 두 딸을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켰고 즐겁게 대학교를 다니는 딸을 보며 엄마도 졸업을 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던 엄마였지만 엄마는 참 강했다. 졸업을 앞둔 엄마는 여러모로 신경을 쓰며 건강이 조금 안 좋아졌다. 그리고 엄마는 말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이러고 있는 자신이 딸들에게 미안해" 미안해할 사람은 엄마가 아닌데 엄마는 말했다.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엄마가 이 모양이어서 미안하다고.


아빠도 엄마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 않았던 생각들로 어두운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기도 했고, 이러지 않았던 나 자신을 마주하며 하지 않았던 말들을 가장 아끼는 이에게 건네기도 했다. 아빠도 엄마도 세월을 피해 갈 수는 없었나 보다. 언제나 변함없이 딸 옆을 지킬 것만 같던 아빠와 엄마의 어깨도 점점 둥근 모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둥글어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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