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제목 : 바람, 물결, 향기, 지나가는 것들
샐리는 골동품을 좋아했다. 옛날엔 이런 골동품을 모으는 샐리를 괴짜라 부르곤 했다. 요즘엔 ‘빈티지‘붐이 불어서 그런지 샐리는 유행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참 이상하지, 골동품이 빈티지로 개명 좀 했다고, 물건은 구닥다리에서 세련됨을 두르게 되는 거 말이야, 샐리가 조카 리라에게 물었다. 몰라, 리라는 빨간 플라스틱 접시를 박박 닦았다. 리라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에 강한 집착을 품고 있었다.
샐리가 골동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과거를 좋아해서였다. 그녀는 추억 속에 머무르고 싶어 했다. 그 시절 감성 공책, 이제는 유행이 지난 캐릭터, 작동이 멈춘 낡은 시계, 시간이 멈춘 물건들은 샐리가 과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리라는 샐리의 방에 들어가면 코부터 벌렁거렸다. 종이 더미 냄새와 먼지 냄새, 다락방에서나 맡을 수 있는 알싸한 숯 냄새가 샐리의 방에 있었다. 리라는 샐리의 추억을 더듬으며 이것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게 조금 서글펐다. 리라의 추억은 느리게 무르익어갔다. 나는 언제쯤? 리라에겐 너무 낡았고, 샐리에겐 적당히 낡은 물건들. 샐리가 껌을 짝짝 씹으며 리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해? 샐리가 낡은 강아지 인형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샐리, 나는 아직 많이 어리네.
샐리는 빨간 오토바이 뒷좌석에 리라를 태웠다. 숲을 가로질러 시내로 나갔다. 울창한 나무에서 차르르- 차르르- 바다 건너 모래가 사락사락 움직이는 소리, 리라가 기분이 좋은지 비명을 질렀다. 샐리가 말했다. 나랑 네 엄마는 좋은 기억이 많이 없어. 그런데 너희 엄마랑 나랑은 진짜 베스트 프렌드였거든. 둘이서 스티커도 모으고 공책에 낙서하고, 인형도 모으고 잘 놀았어. 난 그런 추억을 계속 생각해, 좀 더 많아야 했는데. 추억은 소모되잖아. 이젠, 언니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나.
사진 있잖아. 리라가 말했다. 아니, 어릴 때 모습.
슈퍼에 들렀다. 샐리는 껌 판매대를 두리번거리다가 깜짝 놀랐다. 사장님! 이걸 아직도 팔아요? 샐리가 든 껌은 빨갛고 긴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부푸러 딸기, 라고 적혀있다. 그거 요새 다시 나와. 콜라 맛은요? 그건 안 나와. 샐리가 크게 실망했다. 리라가 물었다. 그게 뭔데? 이거 나랑 언니가 제일 좋아하던 껌. 우리 콜라 맛만 먹었거든. 샐리가 도로 가져다 놓으려 하자 리라가 껌을 낚아채 계산했다. 왜 사는데? 나는 딸기 맛이 더 좋아서. 아, 그러셔. 두 사람은 딸기 맛 껌을 짝짝대며 나뭇잎이 반짝이는 도로를 달렸다. 윤슬이 빛나는 바다, 공기엔 짠맛이 돌았다. 풍선을 후, 불면 깊은 숨결이 공간을 빼곡히 감싸안는 것 같았다. 포근함, 리라는 샐리의 등을 감싸안았다. 샐리, 나도 엄마 생각 많이 해. 그런데 엄마가 너무 빨리 사라져서, 엄마랑 있던 추억이 너무 적으니까. 샐리가 부러워, 샐리는 가진 게 많아서. 나도 생기겠지, 샐리보다 많아지겠지, 추억 말이야. 추억은 소모되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나는 딸기 맛 껌을 씹으면 샐리도, 엄마도 떠올릴 수 있을 거 같아. 빨간 오토바이 뒷좌석은 엉덩이가 배긴다는 기억도.
리라는 검지를 들어 바람결에 그림을 그렸다.
‘이 순간, 햇살이 아스팔트 도로를 산산이 조각낸다. 바다가 소멸하고 유리가 부서진다. 작은 게는 소라껍질 틈을 헤집는다. 넘실거리는 나룻배, 몰려오는 폭풍우, 바람, 소금, 이모의 등에서 쿵, 쿵, 쿵 심장 소리가 들린다. 모호한 경계 틈에 꿈과 현실을 이어 붙인다. 껌 같은 걸로. 그거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자신은 없다. 왜, 추억은 모래알만큼 작아질까?'
나는 별 추억이 없어서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