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왜 좋은지, 내가 왜 글을 항상 쓰게 되는지 알게 됐다. 겉으로 나는 밝고 무덤덤한 사람이지만 나의 본질적인 내면은 상당히 섬세하다. 그런데 나의 이런 섬세함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처럼 밝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내면을 만나면 포근하다. 이 포근함으로 세상을 대하려고 하고, 이 포근함으로 나를 안아주려고 한다. 그게 힘든 것을 이겨내는 나의 유일한 무기다. 이것은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만이 아닌, 누군가 괴롭고 힘들어할 때도 손 잡아주고 안아주고 믿고 안심하게 해 줄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힘든 순간들을 이겨냈었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을 더 확실하게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사랑이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장)'라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사랑의 힘은 크다. 사랑이 있다면 아무리 괴팍한 사람을 보게 되더라도 상대의 지나온 과거가 보이게 돼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으며 용납할 수 있다. 진정한 봉사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나 잘못을 모른 채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 있다. 아무리 험난한 일을 당해도 감내하고 인내할 수 있다.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공포스러운 일을 겪어도 공포의 크기가 한없이 작아진다. 절망스러울 땐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 준다. 감당하기 힘든 슬픈 일이 생겼을 때는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 아팠던 과거에 머물게 될 땐 현재로 돌아오게 해 준다. 또한 욕심이 버려지고 겸손해진다. 안타깝고 씁쓸하게 느껴질지언정 비판하지 않게 된다. 반성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음의 병을 이겨낼 때도 이렇게 이겨냈다. 이 힘이 약해지지 않으려면 나의 내면과 만나야 한다. 나의 내면과 쉽게 만나게 해주는 것이 글쓰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이렇게 나의 내면과 만나게 되면 때론 진지해 보이지만 소소한 유머가 생겨나며 악한 마음은 줄어들고 따뜻함이 느껴지게 된다. 나는 이것을 잃지 않기 위해 글쓰기를 한다. 또다시 아프고 힘든 마음이 몰려와도 스스로를 괜찮다며 안아주고, 자책을 그만두게 만들고, 현재로 돌아와 주변을 살피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만들어주니까.
아프고 슬픈 마음을 토해내며 나의 내면과 마주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왜 눈물을 코로 흘리는가.. 눈물이 나는 것보다 콧물이 더 많아요. 이것이 비염의 묘미가 아닐지.. 드라마 청순 여배우처럼 눈물을 흘릴 수가 없군요." 말로 내뱉고 보니 눈물이 쏙 들어가고 “흐흐흑.” 히죽거리는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나는 나의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가고 있다. 예전에는 절대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의 몇 만 톤처럼 거대하고 무거웠던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나의 내면이 그 큼직한 것을 아주 작은 인형처럼 안아준다. 그리고 내게 말해준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그런데 속이 찔리게 이런 말도 덧붙인다. "집이 이게 뭐니? 손 놓고 있던 집안일 하고 산에 다녀와. 그리고 그 산에 모두 놓고 와. 산은 모든 것을 품어주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정리도 되지 않은 택배들과 먹으려고 했지만 먹지 않은 음식들이 보인다.
아.. 돈 아깝다. 요즘 물가도 비싼데, 먹지도 않을 거면 냉장고에 넣어둘걸. 집이 난장판이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