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예 Feb 10. 2022

작은 책방 도전기

책방 시나몬베어

책방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라는 현타가 올 때면 '작업실을 좀 크게 늘린 것뿐이야.'라는 생각으로 정신승리를 했다. 그런데 막상 책 주문과 단말기, 커튼, 책상, 의자, 책장 등을 주문하고, 그밖에도 굿즈와 앞으로 책방에서 진행할 수업을 짜다보니 피로와 후회와 고단함이 밀려왔다.

무언가 힌트를 얻기 위해 작은 책방을 차린 사람들의 글을 읽고, 주변의 책방을 기웃거려보면 나처럼 혼자서 낑낑대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서 오히려 서글픔이 들었다. 

그런 내 울적함에 대해 경화 작가는 "그래도 혼자서 하니깐 내 맘대로 꾸릴 수 있어서 좋잖아요. 의논해서 의견 조율할 일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기운 없는 미소를 지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경화 작가의 말이 맞았다.


나는 오일스테인을 칠한 나무를 좋아하는 내 취향대로 원목 매거진 랙을 주문했다. 주문 제작 가구라 시간이 꽤 걸렸지만 물건을 받아서 한쪽 벽에 진열해 놓으니 마음에 들었다. 

내 키보다 크고, 얼굴도 없는 가구인데 볼 때마다 나와 쿵짝이 잘 맞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나무의 결마다 켜켜이 쌓아놓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상큼한 주황색 스탠드와도 잘 어울려서 이 가구를 고른 나의 탁월함에 부듯함이 들었다.     

'그래, 경화 작가의 말대로야. 혼자서 하니깐 내 취향을 확실하게 찾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


아직 할 일이 남았다.  타이머를 사서 작동법을 익힌 후 램프에 연결할 생각이다. 그럼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책방에 작은 불빛이 연출되겠지. 우후훗....그럼 타이머 사용법을 또 검색해야 한다... 피곤해.... 천천히 해야지...뿌듯함은 잠깐이고 피로와 수고는 긴 것 같다. 

오드리가 생일선물로 준 모빌도 걸었다. 처음엔 더 높은 곳에 걸려 있었는데 책상 위의 전등으로 위치를 옮기니 아기자기하고 잘 어울렸다. 내 손이 안닿는 높이에 달린 모빌을 옮기기 위해 나는 방법을 궁리해야만 했다. 모빌 아래에 사다리를 세팅해두고 미니 냉장고를 배달해주신 기사님에게 잽싸게 부탁한 거다. 

모빌을 보면서 사소한 꾀를 낸 자신을 토닥여줬다. 기특해기특해~   

내 작업실 공간은 빛이 잘 든다. 그래서 식물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이 아이들은 나에게 정서적인 위로와 공기정화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경화 작가가 나에게 선물해준 선셋 무드등도 켜보았다. 멀티탭이 없어서 잠깐 틀고 기분만 냈지만 그래도 좋았다.  

코코미가 선물해준 시계는 아직 딱 어울리는 자리를 못 찾고 책방 안을 여행 중이다. 소품의 위치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당분간 이곳저곳에 놓고 봐야 할 것 같다.   


아직은 가구와 책이 다 배송되지 않아서 뭔가 허전하고 헐렁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언제 오픈할까 궁금증을 갖고 기웃거리지만 책방 오픈을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주제별로 묶어 놓은 비밀 책들을 포장할 포장지를 사고, 책방 도장을 제작하고 굿즈를 디자인하고, 유리창에 붙일 시트지도 주문해야 한다. 거기에 점심과 저녁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일도 있어서 피로의 곰 한 마리가 늘 어깨에 붙어있는 것 같다.    


한동안 퇴근 후 집으로 가면 오드리가 물었다.

 "오늘 작업은 많이 했어요?"

 내가 퀭한 얼굴로 "아니, 못했어."라고 겨우 대답을 하면 오드리는 게으름에 대해서 운운했다. 이건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몇 번 하다가 나중엔 "오늘도 일이 많았어. "라고만 말했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너에게 무슨 말을 하겠니. 라는 심정으로 입을 닫았다.    

집에 가면 방전이 돼서 아무 생각도,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소파에 쓰러져서 텔레비전을 보는 엄마에게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유튜브로 포토샵 공부를 하라는 오드리, 넌 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한지 모를 거야. 넌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너의 시간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해.


나는 남들보다 적은 에너지를 매일 충전하고 다 쓰며 산다. 그래서 입술을 떼기 힘들만큼 피곤하지만 지금 매우 잘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중얼거리고 있다. 언제나 외로웠지만 언제나 씩씩하게 해냈으니 앞으로도 잘 해낼 거다.   

어쨌거나 지금 배가 고프니 집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 겠다. 그리고 다시 책방으 돌아와 타이머와 멀티탭을 주문하고, 책방에서 할 수업 홍보 포스터와 도장을 디자인할 거다. 오늘도 다크써클을 끌어안고 잠들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저 안아주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