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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Feb 18. 2022

시시한 일에 화가 나고, 소소한 일에 행복해.

책방 시나몬베어

책방 자리의 전세입자로부터 이런저런 하소연을 듣기 싫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조금 손해 보자는 생각으로 전세입자가 쓰던  장비가 잔뜩 달린 cctv와 필요도 없는 스피커를 샀다. 결국 당근 마켓에 되팔아야 했다. 그 번거로움에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쓰레기를 받은 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벤이 핸드폰으로 연결되는 CCTV 캠을 책방에 설치해주었다. 만약 내가 했다면 설치 방법과 설명서를 인터넷에서 찾아 반복해 읽으며 하루치 에너지를 다 쓰고 방전됐을 거다. 고마운 아들 덕분에 에너지를 비축했다.


책방을 꾸리는 일에 도움을 준 일등공신을 꼽자면 벤, 그다음이 간판집 사장님, 그다음이 오드리이다. 그리고 응원을 보내준 지연 씨와 경화 씨, 서울에서 달려와 책방 현장을 봐준 재영 언니도 있다. 주변의 응원이 없었다면 못해냈을 거다.


벤은 캠을 설치해 주고 서랍장 조립도 도와줬다. 마지막에 남은 서랍장 바퀴 정도야 혼자 쉽게 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벤을 집으로 보냈는데 아무리 혼자서 바퀴를 달려고 해도 도무지 나사가 들어가질 않았다. 결국 다다다음 주에 간판 사장님이 오시는 날에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구석에 세워 놓았다. 책방 한쪽에 비뚤게 세워진 그 철제 서랍장을 볼 때마다 눈을 흘기며 된다.  

'쉽게 풀리지 않는 게 인생인가 봐. '


서랍장 조립으로 지쳐서 좀 쉬려는데 책방 문 앞에서 얼쩡거리는 비둘기가 보였다. 책방 문 앞에 둔 고양이 사료를 먹으려고 오는 거였다. 나는 후다닥 달려가 책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요 얄미운 비둘기는 딸랑하고 울리는 현관 종소리에  슬그머니 피하기만 할 뿐 도망치지는 않았다. 내가 발로  소리를 냈더니 그제야 후다닥 날아서 책방 바로 앞 나무에 앉았. 분명 내가 책방 문을 닫으면 도로 날아와 고양이 밥을 먹을 심산인 거다.

나는 책방 안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 성화 봉송하는 사람처럼 빗자루를 올려 들고 비둘기가 앉아있는 나무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서자 비둘기는 놀라서 눈이 동그래지더니 (원래 동그랗지만) 다른 나무로 푸드덕 날아갔다. 

'요것 봐라? 멀리 안 가고 이젠 책방 바로 옆 나무에 앉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빗자루를 올려 든 채 비둘기를 향해 늠름하게 걸어갔. 그런데 이번엔 더 높은 나뭇가지 위로 폴짝 올라가는 거다.

'흥, 내 키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 이거지? 넌 내가 치켜들고 있는 이 빗자루가 안보이니?'

나는 빗자루를 들어서 잽싸게 나무를 쳤다. 그러자 비둘기가 화들짝 놀라며 달아나다가 유리창에 쿵 하고 부딪혔다. 순간 비둘기 시체가 내 발아래에 떨어질까 봐 무섭고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비둘기는 힘차게 멀리멀리 날아갔다.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세대 상가 주택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누군가 나를 내려다본다면 웃긴 아줌마라고 생각할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나저나 이제는 비둘기뿐만 아니라 까치까지 날아온다. 까치는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고양이를 쫓아내고 밥을 뺏어 먹는다. 까치가 그렇게 공격적인 새인 줄 처음 알았다. 

자구 새들이 날아오니 책방 문 앞에서 고양이 밥을 줘야 하는 건지 고민된다. 그동안 고양이가 잘 먹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난 비둘기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어서 너무너무 싫어하는데 어쩌지.

비둘기로부터 고양이 밥을 지킨 뒤 추위에 떨며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이제 좀 앉아서 쉴 수 있겠지 했는데 이번엔 어디선가 나타난 차가 내 책방 뒷문에 바짝 붙여서 주차를 해놓았다. 그곳은 차가 회전해서 돌아가는 구간이라 주차를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도 멀리 주차를 해놓는데 누군지 개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연락처도 없고 사이드 미러도 접지 않았다. 나는 스카치테이프를 길게 끊어서 그 차의 문까지 붙였다. 연락처도 없이, 이곳에 주차를 하면 안 된다는 종이와 함께.


별별 일에 신경을 다 쓰다 저녁노을이 조금씩 번지기 시작할 때 겨우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시시한 일들로 낮시간을 다 보냈다는 생각을 하며 비건 베이커리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는데 조금 우울했다.

'오늘은 꼭 그림 포스터와 마스킹 테이프를 인쇄소에 주문해야지. 그리고 작업도 수정하고... 아, 당일치기로 강원도라도 다녀오고 싶다. 아, 코코미가 3월에 같이 가자고 했던 전주도 가고 싶다. 아, 2월이 끝나가는데 달콤한 딸기잼도 만들고 싶다.'

 

오늘은 비둘기와 낡은 차와 삐둘게 놓인 서랍장에게 잔뜩 심술을 부린 할머니가 된 것 같은 하루였다. 시시콜콜한 일들로 반나절을 보내며 쉴 틈 없이 바빴는데 책방 준비는 허술하고, 개인 작업은 진척이 없는 하루였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면 만날 사랑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요즘의 나는 시시한 일에 자주 화가 나고, 소소한 일에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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