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예 Mar 04. 2022

책방 오픈과 노란우산

책방 시나몬베어

노란 우산 가입을 위해 상담을 받았다.

"만약 연수입이 30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상담사의 말에 나는 냉큼 "그보다 적을걸요?"라고 말했다.

나의 말에 상담사는 잠깐 멈칫하더니 고쳐 말했다.

 "그럼 연수입이 15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그 말에 나는 또 냉큼 "그보다는 적을걸요?"라고 말했다. 

마스크를 하고 있었지만 상담사의 입이 황당함으로 벌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침묵 속에서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상담사가 나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니, 한 달에 백만 원도 못 번다고요? 그럼 월세 내고 유지비 빼면 내가 가져가는 게 얼마 없잖아요?"

 나는 "뭐.. 그렇죠."라고 대답했다. 상담사는 책방을 휙 둘러보더니  "그럼 이걸 왜 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으며 눈을 끔뻑끔뻑 했다.

그 말에 나는 빙그레 미소 지었지만 그의 눈에는 대책 없는 바보의 얼굴로 보였을 거다.

상담사는 눈앞의 순진한 아줌마와 얼른 상담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아줌마가 하는 대책 없는 대답은 미래를 향한 막연한 불안일 거라고 결론짓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한번 끔뻑하더니 서둘러 상담을 이어갔다.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사장님이 얼마를 벌지는 아직 모르시는 거잖아요. 이제 개업을 하셨고 이제 2월 지났잖아요. 그리고 연수입은 일 년 치를 말하는 거니깐 앞으로 일 년에 최하 1500만 원을 번다고 가정하면..."

나는 책방에 대한 정보 하나 없이 기계적인 설명만 반복하는 상담사에게 약간은 심술궂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상담사님, 제가 궁금한 건 이거예요. 전 1500만 원 이하의 수입인데 노란 우산 공제 가입을 해도 될까요? "

나의 말에 상담사는 할 말을 잃고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한겨울에 수영복을 입고 나타난 사람을 본 것 같은 그 표정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제 말에 엄청 당황하셨죠?"

역시 그는 노련했다. 금세 정신줄을 붙잡고 나에게 재차 물었다.

"아니, 이걸 왜 차리신 거예요? 다들 백만 원 이상 벌려고 가게를 차리는 건데 백만 원도 못 벌면 차리면 안 되는 거죠."

" 알면서도 시작한 거예요. 나름 마이너스에 대한 계획을 갖고 시작했어요. 어쨌거나 노란 우산은 적금의 개념인 거죠?"


그다음의 대화는 12월에 해야 하는 수입증명과 세금에 관한 얘기였다. 내가 세무에 대해서 너무 모르자 상담사는 설명하는 중간중간 "아니,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셨어요? 주변에 이런 걸 물어볼 사람은 없어요?"라고 말하며 얼굴이 굳어갔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래서 저도 속이 터져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 지경이에요."라고 말은 했지만 12월에 세무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과 닥치면 또 어떻게든 해내리란 생각을 했다.

상담을 할 땐 태연했지만 돌아가는 상담사에게 문을 열어주고 난 뒤 의자에 앉자 약간은 속이 뒤숭숭해졌다.

나는 책방을 차린 걸 후회하진 않는다. 책방을 열지 않았다면 나는 인생의 변수 앞에서 무너져 우울증에 빠졌거나 화병으로 앓아누웠을 거다. 그러나 그런 속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테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도 않다. 튤립과 나비들 사이에서 사탕을 들고 있는 사탕 토끼처럼 예쁜 책방에서 예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런 이미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편하다.

하지만 그 상담사처럼 나의 도전과 용기를 무모함으로 결론 내리고 코 앞에서 계산기를 흔들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진 않다. 그런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때 힘이 빠지게 하고, 아무도 없는 책방에서 책을 읽으며 느꼈던 충만함과 평화로움을 어지러움으로 바꾸게 한다.

그래도 내 삶의 단면을 알고, 나를 아껴주는 이들은 아낌없이 응원을 해주고 있다. 단지 그들은 자기의 삶을 사느라 바쁠 뿐.


"오늘 기분이 좀 별로인 일이 있었어."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전화번호를 뒤적였지만 나눌만한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 나는 이런 사소함에서 시무룩해지곤 한다.

낮에 만난 상담사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책방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며 그림책은 애들이나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 거다. 그러니 그만 시무룩해하고 잊어야겠다. 그래도 그 덕에 오늘의 그림일기를 채웠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시한 일에 화가 나고, 소소한 일에 행복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