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시나몬베어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2/ 이금이 / 사계절
알로하, 나의 엄마들 / 이금이 / 창비
배우 윤여정 님이 순자 역을 맡아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파친코'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저는 '파친코'를 책으로 읽었는데 제가 상상한 한수는 배우 이민호에게서 풍기는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는 좀 달랐어요. 그렇지만 순자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 김민하는 소설을 읽으며 제가 상상한 모습과 비슷했죠.
소설 '파친코'는 1부와 2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는 일제 강점기 속 하층민의 삶에 대한 묘사가 뛰어납니다. 그래서 박경리의 '토지'가 떠오를 정도였어요. 순자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마치 옆집에 사는 사람인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되어 드라마'미스터 선샤인'도 떠올랐지요. 그런데 2부까지 다 읽은 뒤에는 맥이 빠졌답니다.
'제목 그대로 대를 이은 파친코 기족의 이야기였구나. 아시아 배경으로 도박과 여자가 나와서 미국의 중년 여성들이 열광했나 보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잡기 위해 머리를 잘 썼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받은 느낌은 그랬어요. 작가가 파친코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고급스럽게 포장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와 한국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한 것 같았어요. '강인한 여성의 힘으로 버텨내는 삶'이라는 홍보 문구도 있던데요, 그보다는 팔자 센 여자의 삶이라는 윤여정 님의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책은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드라마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강인한 여성의 힘으로 버텨내는 삶'이라는 문구에 어울리고, 우리가 잘 몰랐던 이민자의 삶을 다룬 이야기라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추천합니다. 1908년, 일제 강점기에 사진으로 결혼 상대를 정하고, 하와이로 이민을 간 한국 신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민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소설은 여성 연대의 힘이 보여주는 따뜻함에 가슴이 시큰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의 비극 속에서 삶의 파도에 용감하게 부딪힌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도 같은 작가의 책입니다. 1부의 끝 편에서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손을 덜덜 떨면서 2부를 황급히 펼쳤어요.
책 속에서 끔찍한 상황은 흐느낌과 넋이 나간 소녀들의 얼굴로 표현되지만 그곳에 끌려가기까지의 순진한 과정은 알아도, 다시 보아도 분이 치밀었어요.
저는 두 책 모두 고등학생 딸과 함께 읽었는데요, 위대한 소설은 찰나의 판타지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오늘의 내 모습까지 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