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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Jan 10. 2023

공허함은 계절처럼 오는 감정이더라.

진저캣의 일기

나는 홀로 앉아 있었다.

각자의 삶으로 바쁜 친구들이 내 준 차 한잔 마실 만큼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그 한잔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강물 같은 시간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왠지 모르게 자꾸 흐르는 눈물을 닦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그래, 바람은 늘 나를 살게 했지.’라는 생각도 잠시, 바람과 함께 감정들이, 생각들이 공처럼 굴러왔다.

또 열심히 달렸다는 자책과 내 삶에 대한 실망, 관계에 대한 공허함, 엄마이자 가장으로서의 피로함, 그리고 경제적인 불안까지 한데 뭉쳐져서 그 공은 커다랗게 되었다.


뿌듯함을 느낄 줄 알았는데 가슴을 때리는 이 공허함은 뭘까.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왜 그걸 기대했을까.

기대하는 걸 갖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잘못 살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나는 작아지고 공은 점점 커져서 그 아래에 내가 깔리는 듯했다. 그때 띠링! 하고 울리는 메세지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기분은 어때?"

친구가 나에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물었을 때 "매일 나의 안부와 기분을 물어주는 사람이면 좋겠어."라고 했더니 잊지 않고 문자를 준 거다.

"오늘은 너무 공허하고 우울해서 일찍 잘게."라고 했던 나의 마지막 카톡을 기억해준 고마운 친구.

"응 어제보다 좋아졌어. 나에게 물어봐줘서 고마워."


친구에게 문자를 받은 날, 나는 코로나 후유증으로 으슬으슬한 몸을 끌고 집을 나섰다. 생각이 몸을 끌어내릴 땐 걸어야 한다는 걸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아직 녹지 않은 눈 때문에 미끄러운 곳을 피해 걸으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 그래, 이렇게 비켜가면  되지. 사는 일도 이와 같은 거지.’

봄을 믿으며 고요하게 서있는 나무들을 보니 나를 짓누르는 이 공허함도 계절의 순환처럼 흘러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켜 걸으며 흘러가게 두면 어느새 봄이 오겠지. 나도 저 나무들처럼 봄을 믿으며 기다려야지. 봄이 오면 새들의 정신없는 수다에 미소 짓게 되고, 움트는 새순을 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거야.

2월에는 친구에게 강릉을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딸기잼을 만들고, 다가올 여름에는 루지를 타러 가야지.‘


밤하늘은 차갑고, 맑고 파랬다.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반짝이는 별을 바라봤다. 저 별들은 과거의 빛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에 반짝였던 빛을 보며 위로를 얻고 꿈을 꾸고 기도를 하고 있다.

저 별처럼 분명 지난 시간의 나는 환하게 웃었고, 감사했고, 삶을 사랑하며 반짝였다. 이만하길 다행이라 생각했었고, 소박한 일상에서 의미를 찾으며 사람으로 기쁨을 얻는 시간도 있었다.

그래, 행복했던 어제를 잊지 말자. 불행했던 기억이 떠오르면 비켜 걷자. 과거의 반짝임으로 얻은 나의 후광을 발견하며 오늘의 나를 대견하고, 기특하게 생각하자.


나는 친구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 내가 느끼는 공허함이 계절처럼 오는 감정이란 걸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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