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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May 26. 2023

상상하지 못했는데 괜찮은 것 같아.

산책하는 진저캣

오월의 선물들.

1. 베트남에서 사 온 젤리 - 책방 옆의 카페 사장님이 주셨다. 작업하다가 졸리면 하나씩 먹어야지.

2. 핸드크림 - 제주 여행을 다녀온 친한 동생이 여행 기념품으로 주었다. 마침 핸드크림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3. 깜찍한 엽서와 타자기 키보드 - 타자기 디자인의 키보드는 어버이날 선물로 아들이 주었다. 진짜 타자기 키보드는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내가 타자기만 보면 정신을 잃고 탐낸다는 걸 기억해 주었다는 게 고맙다.  

깜찍한 엽서는 지난주에 간 그림책 전시회에서 샀다. 볼 때마다 천진난만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 좋다.  

그 옆의 제라늄 화분은 경화씨가 집에서 고이고이 키워 분양해 주었다. 이것 말고도 세 개가 더 있는데 날이 갈수록 쑥쑥 크고 있어서 자랑스럽다. 내가 아이들뿐 아니라 식물도 잘 키우는구나 싶어서.  그리고 책방 공간이 무언가를 살리는 곳인 것 같아서.

4. 곰돌이 주머니 - 책방 옆 사장님이 시나몬베어와 어울린다며 건네주셨다. 너무 귀엽고 크기도 넉넉해서 좋은 파우치이다. 무엇보다 곰돌이를 보고 나를 떠올려 주셨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이외에도 소꿉친구가 오이지와 오이 소박이, 얼갈이 김치, 딸기쨈을 만들어 주었고, 시어머니표 매실액도 주었다. 스승의 날엔 선물과 삐뚤빼뚤한 글씨의 편지도 받았다.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빼면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날도 아닌데 건네받은 선물들이 대부분이다. 선물해준 고마운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인스타에 하나 둘 인증사진을 올리다가 깨달았다.

'나는 참 선물 같은 사람들 속에 살고 있구나!'

말 그대로 나에게 선물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

네 잎 클로버 같은 사람들.

그냥 지나지치 않고 그 순간에, 그 시간에 나를 기억하고 생각해 준 마음들이

현재의 삶을 채우고 있었다.

며칠 전 달과 별이 나란히 떠있는 게 예뻐서 피로한 몸을 끌고 저녁 산책을 나갔다.

최신 갤럭시폰은 달도 커다랗게 찍히던데 내 옛날 폰은 현실보다 오히려 더 멀리 있는 것처럼 찍혔다. 나는 조금이라도 선명하고 깔끔한 사진을 얻기 위해 달과 별을 보며 걸었다. 높은 교회 건물 뒤로 달이 꼴깍 넘어가길래 총총걸음으로 교회 건물을 지나쳤는데 어랏? 달도, 별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텅 빈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서쪽 방향으로 걸어간 게 잘못되었나?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지? 정재승 교수님이나 물리학자 김상욱 님은 아시려나? 아니지, 천문학자 심채경 님에게 물어야 정확한 답을 얻겠지...'

달과 별을 놓쳐서 아쉬운 마음으로 저녁 산책을 마쳤다. 터덜터덜 집 앞에 오자 어라? 달과 별이 다시 보였다.  

'그래, 반짝임은 알 수 없는 어딘가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거였어.'

선물 같은 사람들 생각으로 골똘했던 밤에 집 앞에서 빛을 내는 달과 별을 만나다니 신이 주는 메세지 같았다.



분노와 증오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

사소한 일에 행복해지고, 작은 소중함을 발견하며

가까이 머무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늘어간다.

이렇게 나이 드는 건 상상하지 못했는데 괜찮은 것 같다.

잘 늙어가고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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