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예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예 Aug 09. 2023

복숭아를 깎아 먹고 영화를 볼 거다

산책하는 진저캣

내 나이 49세.

내 주변의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보면 등산, 골프,  아니면 종교 생활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만든다.

그밖에 화투로 친목을 다지는 사람도 있다. 그녀는 외국 여행을 가도 호텔에서 화투만 치고 올 정도로 화투를 좋아한다.


몇 달 동안 매달린 그림책 작업이 마감되면서 소모임 어플을 켰다.

책상에 앉아서 그림만 그리다 보니 사람이랑 어울리고 싶었다. 새로운 얼굴도 관찰하고 싶었고 이래저래 생기를 얻고 싶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산책 모임을 전부터 가입하고 싶었기에 어플을 깔자마자 검색했다.

그런데!

47세까지만 가입이 가능했다.  

등산을 하기엔 체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골프는 약간의 반감과 함께 흥미가 없고,

종교 생활은 이미 많이 해봐서 오히려 스트레스,

화투는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게임이라는 결론을 갖고 있는 내가 유일하게 들고 싶은 소모임이었는데!


물론' 74년생 모여라!' 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나는 모여서 수다 떨고 술 마시는 모임도 별로인 사람이다.

나는 친해지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친해져야만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뭐, 술도 잘 못 먹고 먹으면 다음날 몸이 퉁퉁 붓기 때문에 즐겨하지도 않는다.

이리도 까다롭고 확고한 취향을 가진 나는 어떻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책방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겠지만 나는 리더가 되고 싶지 않다. 그건 피곤한 일이다. 무엇보다 나는 공간의 환기를 위해 책방이 아닌 곳을 원한다.


결국 돈을 들여서 무언가를 배워야 할까 보다.

그럼 무얼 배울까.

그런데 배우자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

나는 지금 휴식이 간절한지도 모르겠다.


 살랑바람이 불듯

문득 외로워진다.

체념이 섞인 깨달음으로 외로움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소모임에서 연령 제한으로 거부를 당하니 조금 외로워진다.

이런 기분 별로다. 나이 듦이 서러워진다.

.

.

.

나는 소모임 어플을 삭제했다. 생각해 보면 새로운 만남도 다 거기서 거기니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현명하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나에게 맞는 즐거운 일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밀린 집안일을 하고

복숭아를 깎아먹으며 볼 만한 영화가 있는지 찾아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침내 재가 될 때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