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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Sep 19. 2024

이유를 모른 채

소예일상

“엄마는 이제 시댁도 없는데 왜 명절 우울증이 있어요? ”

딸의 순진무구한 질문에 말문이 콱 막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인생에 대해, 인간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스믈 한 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가슴이 답답했다.

“너무 외로워서 우울했어. 명절에 만날 사람도 없고 찾아주는 사람도 없어서, 내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우울했어. 이렇게 내팽개쳐둘 거면 날 왜 낳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어. 차라리 날 낳지 말아 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우울했어.

요 며칠 우울증으로 힘들었어. 너희들은 이제 다 컸고, 내 일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질 않아서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니깐 우울하더라고. 내가 죽는다면 아마 우울증으로 죽게 되겠지.”

나의 냉소적인 말에 눈이 동그래진 아들이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우리 이제 독립하면 앞으로 엄마 혼자 지낼 텐데 그러면 어떡해요! “

엄마 때문에 걱정 많은 아들은 이제 우울증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운동을 하고 가끔씩 술도 먹으면서 흘려보내겠지. 심해지면 우울증 약을 먹으면 되고. “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이들은 나에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라, 명절마다 여행을 가라고 말했고 나는 “응, 그래.”라고 힘없이 대꾸했다.

나는 진심을 속으로 삼켰다.

‘얘들아, 다 해봤어. 다 거기서 거기이고 이젠 즐겁지 않아. 너희들이 이번 명절에 나를 집에 혼자 두고 아빠랑 시골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게  배신감 들고 싫을 뿐이야. 나는 이 상황과 감정을 짊어지려고 꾸역꾸역 노력 중이야. 그래서 힘들고 우울하고 살기 싫은 거야.‘


나는 내 인생이 가엾고 피로하다. 버티며  끌어온 감정이 힘들고 괴롭다. 어릴 때부터 쭉 아무도 없었다. 혼자 울고 싸우며 삼켰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살기 싫을 뿐이다.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송편이랑 부침개랑 갈비를 싸왔을 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며 소리쳤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만든 음식을 내가 어떻게 먹을 수 있겠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여전히 헤아림 받지 못하는 내 삶이 지긋지긋했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아들은 우울증에서 천천히 기어 나오는 나에게 낮잠을 좀 자라고 했다. 눈만 끔뻑대던 딸과 내가 자는 동안 그 애는  땀을 흘리며 집안일을 했다.

오후 3시, 우리들은 각자의 공부할 거리를 들고 동네 카페에 갔다. 나는 굳은 손을 풀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마음이 평화로웠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다음 작업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곰곰이 생각하는 나를 느꼈다.

‘내가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면 미완성인 내 작업이겠구나.‘


이 글을 쓰면서 덧붙인다. 내가 살아야 할 또다른 이유는 나를 걱정하는 아들이라고.

나는 종종 ‘ 이쯤에서 끝낼까? ’ 하는 위험한 생각에 빠졌고 그때마다 어린 자녀들을 보며 삶의 의지를 붙잡았었다. 그리고 이제 내 키보다 커버린 아이들을 보며 다시 ‘이쯤에서 끝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빠졌다.그런데 내가 생을 뚝 끊어버리면 나와 닮은 아들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건 누균가에겐 엄청난 비극일 수 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더라도 그냥 흘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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