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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Oct 21. 2021

샤베트의 5번 트랙

진저캣의 일기


순전히 내 취향으로 A에게 이소라의 CD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함께 그 시디를 반복해서 들었는데 3번 트랙까지 경쾌하고 부드러운 노래가 흘렀고, 4번 트랙쯤에 날아가는 풍선처럼 밝은 노래가 나왔다. 그 뒤에 이어지는 5,6번 트랙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흐린 하늘 같은 노래였다. 나는 3번 트랙까지 흥얼거리며  듣다가 4번 트랙의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다음 트랙 선택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때 동시에 나와 그의 손이 시디플레이어에 닿았다. A와 나는 대중적이지 않고 우울한 분위기를 지닌 5번 트랙의 노래를 좋아했다.


여러모로 지친 요즘, C에게 전화를 걸었다. 편안한 누군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코드는 밝음, 코믹, 유쾌함이기에 나는 한껏 톤을 올려 "여보세요"라고 말문을 열었지만 5분도 안 돼서 롤러코스터처럼 목소리가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언니, 모노드라마 찍어요? 어떻게 사람의 목소리가 한없이 밝았다가 순식간에 기운이 쪽 빠져요? 깔깔깔"하고 웃었지만 나는 뭔가 엉뚱한 집의 초인종을 누른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살림하는 걸 좋아하고, 어두운 유년기의 추억이 있고, 그림을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음악적 취향이나 영화 취향, 심지어 드라마 취향도 달랐다. 그녀는 <나의 아저씨>를 보면 우울한 기분이 들 것 같다며 보지 않았고, <비밀의 숲>은 머리가 아프다며 싫어했다. 내가 듣는 음악은 그녀를 졸리게 했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그녀의 뱃속을 아쉽게 했다. 그래도 우리는 잘 어울렸다.

단지, 요즘의 나는 그녀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의 소통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가 없는 그녀에게 자녀를 키우는 복잡한 심정을 얘기하다가 그녀의 경험치를 넘어서는 주제라는 생각에 말끝을 흐렸고, 내 기분도 흐려졌다. 정밀아의 <언니>라는 곡을 듣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는 말도 분위기가 처지는 얘기인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나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폭넓은 교제를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런데 소통을 향한 나의 열망은 C와 내가 5번 트랙을 함께 누를 일은 없을 거라는 결론을 갖게 했다. 그건  12인용 식탁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처럼 쓸쓸한 기분이 들게 했다.

괜찮다. 나는 5번 트랙의 정서를 가진 사람이지만 1,2,3번 트랙처럼 경쾌하고 부드러운 음악도 좋아한다. C와는 그 음악을 함께 들으면 된다.

5번 트랙은 혼자 즐기면 된다. 이제 익숙해져야 한다.

조금만 더 무뎌지고 외로움을 잘 갖고 노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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