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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Nov 19. 2021

책방 시나몬베어

진저캣의 일기

우리 동네 책방으로는 코뿔소책방과 소예책방이 있다. 

코뿔소 책방은 뉴욕의 공원을 연상시키는 널찍한 공원을 앞에 두고 있어서 내가 책방 자리로 찜했던 곳이다. 대출을 받아야 하는 고민과 화장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고민만 했는데 몇 달 후 그곳에 코뿔소 책방이 들어왔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동네에 살고 있다니! 놀라움이 70, 기회를 놓친 분함이 30으로 느껴졌다. 

내 것도 아닌데 뺏긴 것 같은 혼자만의 아쉬움으로 책방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라면 이 넓은 공간을 이렇게 잘 운영할 수 있었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내 작업은 뒷 전이 됐을 것 같다. 그러니 내 것이 아니었던 거다.

한 번 기회를 놓치고 나니 일단 책방 이름부터 지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짓고 온라인 책방 운영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내 이름을 딴 소예책방으로 결정했다. 소신있는 예술가. 소박하고 예의바른 사람. 뭐 그런 뜻으로. 그런데 검색어를 돌렸더니 헉! 불과 몇 달 전에 온라인 책방을 연 소예지기님이 있었다.

 "소담스럽고 예쁘다라는 순우리말로 책방 이름을 지었어요. "

아뿔싸, 이번에는 이름을 뺏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sns 디엠을 보냈다. 

 "어머, 제 이름으로 책방을 열려고 했는데 먼저 문을 연 분이 계셨군요.^^"

상냥한 소예지기님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할 일은 아닌데 말이다. 소예지기님은 우리집 뒤, 1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동네에 둘 씩이나 산다는 건 일종의 경고음처럼 느껴졌다.

운명의 여신이

 " 이래도 계속 생각만 할래? 벌서 10년째야." 

하며 내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내 안에서 세 번째 폭풍이 일었다. 우리 동네 예쁜 까페거리를 다니면서 나도 이 곳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한 거다. 

'올 해와 내년엔 수험생의 엄마로 바쁘고, 지금 두번째 창작 그림책 작업에 몰두해야 하는데 무슨 책방을 연다고 이럴까.. 난 언제나 체력은 부족하고 열정은 넘치지. 게다가 월세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려고?'

그러자 머릿 속에서 코뿔소...소예책방...이라는 단어가 떠다녔다. 잡히지 않는 얄미운 모기처럼.


일이 풀릴 땐 술술 풀린다. 이곳저곳 저렴하고 조용하고 책방과 어우러질 수 있는 주변 상가가 있는 곳을 알아보고 다녔는데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책방을 열게 되었다. 우연히 시세보다 싼 월세로 나온 거다. 

나는 세 번째의 폭풍이 불었을 때, 에이, 몰라! 하고 그냥 팔을 쭉 뻗어서 꿈을 잡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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