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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파커 Dec 15. 2021

책 하나씩 골라 소개팅에 나갔던 남녀, 그 엔딩은

 만두 먹는 남자와 맥주 마시는 여자는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dㅓ

만두를 먹는 남자와 맥주를 마시는 여자. 퇴근 후 지친 마음을 달래는 메뉴는 다른데, 좋아하는 책은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대한 감상을 나누던 두 사람. 약간 상기된 얼굴로 주선자에게 문자를 보낸다. ‘♥♥♥♥’ 5점 만점에 4점. 오, 이대로 커플 성사? 그래, 만두랑 맥주는 세트여야 제맛! 하고 (속으로) 외쳐본다.


이것은 N 포털사이트에서 진행한 ‘책개팅(책+소개팅)’의 한 장면이다. 마주 앉은 남녀가 독서 취향을 시작으로 취미나 연애관 등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방식이다. 어색한 몸짓과 설레는 눈빛. 20대들의 소개팅(이제 좀처럼 보고 들을 기회가 없다 보니)을 훔쳐보는 재미도 재미인데, 이들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듣는 것도 흥미로워 단숨에 정주행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같은 책을 좋아한다고 연애가 잘 풀리는 건 아니겠으나, 비슷한 취향의 공유는 연애의 확률이나 생산성(?)을 높이는 데 분명 역할을 한다. ‘책개팅’ 참가자들이 상대의 첫인상에 야박한 점수를 줬다가도, 책 이야기를 들은 후 다시 후해지는 경우를 보면 말이다. 물론, 그 반대도 있으니 책만큼 타협이 어려운 취향도 없다. 관심 없는 분야나 선호하지 않는 작가의 책을 자꾸 권하는 연인을 한번 떠올려 보자. 환심을 사기 위해 초반에는 몇 번 볼 수 있겠지만, 그게 계속되면 괴롭지 않겠는가. 대대적인 취향의 전향이 이뤄진다면 몰라도.


친한 후배 A는 호감 가는 여성(그리고 이분의 아버지까지)이 한강 작가의 팬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검은 사슴’을 들고 다니는 노력(수많은 노력 중 하나에 불과했겠으나)을 기울인 끝에 사귀게 됐다. 그런데 너무 읽기가 어려워 사귀기 시작한 날로 책을 덮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무슨 심리였는지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선물했다고. A는 “가장 좋아하는 책이기도 했고 빨리 읽히기로도 최고의 소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겠지. 두 사람의 연애는 금세 읽다 만 책처럼 덮였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B는 소개팅 첫 만남에서 책을 선물 받았다. 접선 장소도 요즘 2030 여성들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합정동의 동네 책방. 먼저 와서 책을 좀 둘러봤다는 상대방 여성은 “제가 시를 좋아해서요”라며 시집 한 권을 내밀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감성 터지는 화면 아닌가. 시집의 저자는 요즘 꽤 인기가 많은 30대 남성 시인이었다고 한다. B는 이 시인의 다른 책을 이미 본 적 있기에, 반가워하며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 여성분이 퍽 난감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알고 보니 시인에 대해서도, 또 그 시집을 출간한 국내 대표 문학 출판사의 이름도 잘 몰랐던 것이다. "아,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니 B는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방탄소년단(BTS)을 모르고, SM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책 취향 맞추는 일이 난도가 참 높군, 싶은데 모범사례도 있다. C는 연애 초기 여자친구에게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선물했다. 자신이 읽어서 좋았고, 또 제목도 당시 자신의 기분과 딱 맞아떨어졌다고. 맨 앞장에 “당신을 만나 내 인생이 두근두근하다”는 메시지까지. 여자 친구가 그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두 사람은 지금 부부가 됐으니, 나름 C의 진정성이 통했던 듯싶다.


처음과 마지막 사례가 훈훈해서 약간 걱정이 된다. 혹시 지금 책 선물을 하려고 인터넷 서점을 뒤적뒤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책은 읽지도 않고 ‘두근두근 내 인생’과 같은 제목을 찾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지 말자. 그 이후에 오는 것들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싶지 않으니. 도서상품권을 추천한다. 그게 너무 삭막하다면, 서점 데이트를 하라. 상대가 고른 책을 계산 해주는 아주 안전하고 폼나는 방법도 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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