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장애 일상 - 살아있는 고통

흘러가는 어느 날

by 미미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몽롱하고 혼탁하게 느껴진다.


중추신경계 진정작용을 하는 신경안정제를 먹어야만 잠을 잘 수 있고 지속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잠에서 깬다.

나는 "잠"을 자고 있는 게 맞나?

강제로 수면을 유도하여 진정하고 있는 게 아닐까 - 생각들 정도로 수면의 만족도가 낮다.

수면과 진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우울 장애 치료약을 더 많이 써보기도 했지만 아침에도 몽롱하고 저조한 기분이 유지되는 것이 싫어서 최소한으로 저녁약을 먹고 잠을 청해 본다.



학생이었을 때나 직장에 다닐 때에는 30분 정도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집을 나섰다.

지금 나의 아침은 온전히 아기엄마로서 살고 있기에 아이들을 깨워 식사를 챙겨주고, 아이들이 식사하는 동안 머리를 묶어주거나 가방을 점검해 본다.

아이들을 보내고 강아지 산책을 시킨다.



기상-아이들 케어-강아지산책



이 과정에서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한다.

나에게 이 시간은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라 행동하는 시간이니깐.




이른 아침, 혼자가 되면 허무하다.

두려워진다.


많은 기억들과 그보다 더 많은 감정들이 밀려오는데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들이라 상대할 가치가 없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상기해 보고 만약에 졸음이 쏟아진다면 잠이라도 청해 본다.

계속하여 슬픔을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올 것 같다면 데팍신서방정이 포함된 우울 장애 치료약들을 털어먹는다. (아침약임)

습관이 된 아침커피. 커피를 마시며 집안을 청소한다.

무언가 일을 하고 있으면 생각이나 감정이 누그러진다.

온 집안 바닥을 쓸고 창틀을 닦고 주방 냉장고장과 수납장을 닦는다.

마지막으로 바닥을 닦는다.

집 안을 청소하는 건 365일 매일 해야 한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먼지가 이 집을 질식시킬 것 같은 불안함이 든다.

직장에 다닐 때는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거나 자기 전 청소하곤 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린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나를 믿어주고 일을 맡겨준 이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일하고 있다.

자학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자꾸만 내가 싫기 때문에 나를 믿어준 이들이 더욱 고맙다.

감정에 휘둘려서 표류하는 무능한 내가 지독하게 자본주의적인 사회에 어울리는 인간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누군가를 만나서 감정을 교류하거나 친밀함을 공유하고 싶지 않은 내가 민주주의에 걸맞은 사회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생명에 만족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버티는 내가 건강한 인간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일을 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나 자신을 학대하기 때문에 나는 계속하여 무언가를 찾아 일한다.




나가는 약속은 되도록이면 하루에 다 잡는다.


이른 오전에 아이엄마 친구들을 만나서 간단한 티타임을 하고 오후에는 아이 학원을 데려다준다든지, 아이 학원이 끝날 때를 기다리면서 지인들의 집에 방문한다.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하루이틀이면 족하다.

나 역시 사람이 보고 싶고 대화하여 풍족해지는 친밀감이 좋지만 관계에 의지하면 나 스스로가 먼저 지쳐서 숨게 된다.

우울 장애를 겪는 나는, 타인과 감정과 친밀감을 공유하는 시간만큼 나 스스로에게 가해진 학대를 보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다소 강박적이지만 일정하게 반복되는 일정과 오로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날씨가 좋으면 나가서 걷거나 뛴다.


하루에 족히 만보를 채우면 피로하면서 동시에 활력이 돈다.

이 기분이 정말 좋다.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8월은 너무 더웠고 장마가 겹쳐서 그리 많이 걷지 못했는데... 그만큼 밀려오는 감정과 싸우는 날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지치고 화가 나는 날에는 공황장애가 찾아온다.

마음이 답답해서 찢어버리고 싶은 느낌, 식은땀이 나고 쓰러질 것 같은 증상,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과호흡 때문에 숨이 안 쉬어지기도 한다.

베란다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면서 오늘도 살아있음에 눈물이 난다.

찬장 한편에 있는 필요시약을 먹고 벽을 쳐다본다.

조용해본다.

다시 아무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입도 마음도 조용해본다.



나는 가면 우울 장애 증상이 심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집으로 오거나 남편이 돌아오면 다시 활력 띄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준비된 식사를 함께하고 설거지하고 아이들 숙제를 봐준다.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거나 역할놀이를 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잠을 설치지 않도록 적당한 온도를 맞춰주면 얇은 이불을 덮어준다.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 팔베개를 해준다.

아이들이 내 귀에 바짝 붙어서 쫑알쫑알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해준다.

새삼 놀랄 때도 있고 신기할 때도 있는데 그 끝은 언제나 아리다.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데 이런 엄마를 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그래도 엄마라고 온몸을 의지한 채 오늘의 희로애락과 내일의 설렘, 걱정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고맙다.

아이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고요해서 현실감 없는 이 밤이... 오늘도 잘 지냈구나 증명해 준다.



잠이 오지 않아도 눈을 감는다.

약에 빠진다.

잠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내일은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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