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녀린 여자였다.
속은 여리고 겉으로 보기엔 강해 보였다.
그런 엄마가 좋았다. 든든했다.
아버지가 없이 자란 나는 엄마에게 더욱 의지했고 아버지몫까지 사랑했다.
물론 지금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엄마를 만나지 않는다.
가녀리던 속은 겁으로 가득 찼고 강해보이던 겉은 괴물이 되어버린 듯 한 엄마.
엄마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나는 삶을 등지려 했다.
내가 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뒤돌아보면 현생의 고통은 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뒤따르고 있다.
문득 밤하늘을 보았을 때 떠있던 달이 무심히 내 뒤를 쫓는 것처럼 나의 고통은 무심히 내 옆에 남아있고 엄마는 그 고통을 내 곁으로 가져다주는 사람이었다.
남은 내 삶을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싶었다.
어느 날부터 환청을 듣기 시작했다.
환청의 대부분은 엄마의 목소리였다.
환청은 나를 과거의 무기력한 상태로 데려다 두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엄마의 마음처럼 엄마의 목소리를 한 환청조차 나를 과거로 끌고 가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감정에 가둬버렸다.
환청을 느끼는 날에는 하루종일 무기력하고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진다.
머리털을 쥐 뜯고 싶은 충동과 심해지면 창문 밖으로 몸을 날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환청을 듣는 날에는 극한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야, 너는 니 몸뚱이만 깨끗하면 다냐? 몸뚱이만 닦아대는 건 지 아비랑 똑같아서는...
음흉하게 방 안에서 전화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거지 같은 년,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목욕을 할 때면 내 몸만 닦냐는 엄마의 환청이 들려온다.
정신을 차리자.
빨리 변기도 화장실 바닥도 쓰레기통도 비워야 해.
주전부리가 먹고 싶어서 빵집을 기웃거리면 밥은 안쳐먹으면서 빵은 처먹냐는 소리가 들려오고 떡집을 지나칠 때면 떡에 방부제가 얼마나 많은 줄 아냐는 소리가 들려온다.
책을 읽고 있으면 네가 박사인 줄 아냐며 깔깔 거리는 비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수치스럽다.
환청은 내 마음이 만든 소리이다.
실제 사람이 말하는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아니다.
내 마음이 나에게 하는 소리이다.
엄마의 목소리는 결국 내가 나에게 하는 목소리라는 걸 우울장애약을 먹고도 한참 후에 알았다.
비아냥 거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나 생생했고 익숙했기 때문에 환청을 들으면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애쓰거나 극심한 무기력, 우울감에 빠졌기 때문에 환청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딸에게 환청까지 들리게 했던 엄마는 나쁜 엄마였을까?
결코 아니다.
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좋은 엄마이다.
그저 약하고 가녀린 사람이라 괴물로 변한 것이다.
나는 괴물로 변한 엄마마저 사랑했지만 내 몸과 정신은 그러지 못한 모양이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었던 순간에 나를 삶을 등지고 싶었던 만큼 엄마를 사랑했다.
큰언니를 낳으러 갈 때는 눈이 많이 내려서 병원에 가는 길이 힘들었고, 작은언니를 낳으러 갈 때는 비가 많이 내렸단다.
막내딸인 나를 낳으러 가는 날에는 새벽녘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단다.
간간히 전해오는 진통 때문에 땀이 맺히려 하면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새 생명 탄생을 응원해 주는 듯했다.
병원 대기의자에 앉아 잠시 잠이 들었을 때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왔다.
가끔 기도드리러 갔던 사찰에서 본 미소 그대로 엄마를 쳐다보며 볼록한 배를 쓰다듬으려 하는 순간, 잠에서 깼고 곧이어 내가 태어났단다.
*관세음보살: 불교의 보살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보살로, 중생의 소리를 듣고 괴로움을 없애주거나 소원을 들어준다는 보살
젖이 나오지 않아도 보채지 않고 분유든 퓌레든 잘 먹는 모습이 예뻤고 잘 울지 않고 잘 자는 모습에 참 고마웠다.
아기의 귀가 크고 길게 쳐져 있어서 가끔씩 꿈에서 본 관세음보살이 생각났다.
엄마를 따라서 가게에서 쪽잠을 자야 할 때도 불평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둘째 딸의 사춘기가 지독하리만큼 심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얌전하고 평온했던 막내딸 키우기.
엄마는 나를 '선비'라고 불렀다.
그만큼 말이 없었고 사리분별 잘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책을 사달라고 하거나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면 아낌없이 보내줬다.
당시에 돈이 아쉽지 않은 상황이라서 가능하기도 했지만 언니들에게 의례 하는 비아냥거림 없이 학업에 관한 것을 지원해 줬다.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제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게 기특했고 알아서 할 거란 믿음으로 학업적인 면에서는 터치하지 않았단다.
실제로 나는 엄마에게 "공부해라" "시험날짜가 얼마나 남았냐" 등의 학업적인 터치를 전혀 받지 않았는데 엄마는 이걸 '믿음과 기다림'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했을 때 나는 꽤 서운하게 생각했던 부분인데 엄마에게는 '공부하란 말 안 해도 대학에 간 기특한 딸과 그 딸을 키운 엄마'라는 그럴싸한 인생담이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매우 외향적이었고 사람들 만나는 걸 즐겼기 때문에 나를 집에 잡아두고 잔소리하지 않았다.
조용히 엄마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것에 대견함만 느꼈다.
가게에서 잠이 든 나를 깨우지 않고 둘러업고 집으로 걸어오는 체구도 작은 엄마
내가 먹고 싶다는 먹거리는 모두 사줬고 외국에 나가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명품 코트를 사주기도 했다.
이렇듯 평소에 매우 활발하고 나에게만 한정으로 다정했던 엄마는, 아버지와 싸울 때면 180도로 변신하여 모든 것을 불태울 기세로 활활 타올랐기 때문에 어린 나는 '엄마의 진짜모습'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엄마를 변하게 만드는 아버지가 증오스러웠다.
어제는 아버지의 옷을 정성스럽게 다렸던 엄마가 오늘은 아버지의 옷을 가위로 자르고 소리 지르기도 했다.
엄마는 화가 나면 주체하기 어려웠고 과격하게 표현했으며 그 여파가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고등학생이었던 작은 언니가 외박하고 들어왔을 때, 언니는 엄마에게 맞아서 코뼈가 내려앉았다.
코에서 피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엄마는 언니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코를 움켜쥐고 우는 언니의 모습은 아직도 흐릿하게나마 기억에 남아있다.
언니가 무언가 잘못을 하면 바로 머리끄덩이가 잡혀서 펄럭이는 종이인형처럼 나뒹굴었다.
언니에게 휴지를 가져다주는 것조차 나에게는 큰 용기였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맞을까 봐 무서웠다.
집이 초토화되어서 이제 서로 못 보고 지내겠다 싶어도 다음날에는 김치를 담가서 손으로 떠 먹여주는 푸근하고 다정한 엄마로 되돌아와있었다.
대애충 엄마의 비위를 맞춰가며 지내면 되겠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