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 이야기 :

그리고 다섯 살

by lea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며

혹, 놀만한 거리라도 있을까 하여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다섯 살 어린아이가 찾아 헤매는 장난감이라는 것은 고작 흙속에 박혀 있는 동전을 파내는 일이거나,

운 좋게 예쁜 돌멩이를 발견하면 옷자락에 반질반질하게 닦아 주머니에 넣고

득의양양해하는 정도에 불과했을 터였다.


며칠 전

동네 또래 아이들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

그중 여섯 살 되는 여자 아이 하나가 내가 겨우 다섯 살이라는 이유를 들어

함께 놀 수 없다며 무리에서 나를 배제했기에,

나는 그날 이후 홀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심심하고 억울한 마음이 짙게 들었고,

외로웠다.

집에는 언제나 늘 아무도 없었고,

동네의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길은 아직 어린 나에게는 두려움과 막연한 공포가

뒤섞인 거대한 모험과도 같았으므로 사방을 조심스레

살피며 다닐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이처럼 냉정하고 무심한 것이라는 사실을 비록 다섯 살 어린 나이지만

이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재래시장까지 발길을 옮겼다가 별다른 소득 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해는 하늘 정수리에 높이 걸려 있었으나, 오후 3시 전에는

무조건 귀가해야 한다는 엄마와의 약속 때문에 걸음을 재촉하던 바로 그때,

문득 눈앞에 무언가를 발견했다.


분명 원래는 하얀 털을 가졌을법한 강아지였으나

바깥을 얼마나 떠돌았을지 짐작이 갈 정도로 회색에 가깝도록 더럽고 지저분한

작고 연약한 몰골이었다.

나는 순간 격한 흥분과 환희에 휩싸여 손을 내밀며

"이리온, 일루 와" 하고 조용히 불렀다.

강아지는 천진한 어린아이에게서 위협을 느끼지 않았는지 경계심을 풀고

다가와 내 손을 핥았다.

마침내 주머니 속에는 점심에 먹다 남은 라면 부스러기 봉지가 있었기에

그것을 잘게 부숴서 강아지에게 내어 주어 주었다.

작은 강아지는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잠시 생각 끝에,

이 작은 강아지쯤은 안고 갈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낑낑 대는 강아지를 억지로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땀이 났고 힘들었지만

그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강아지를 두고 갈 순 없었기 때문에 뒷일은 생각도 안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수돗물로 더러운 털을 씻겨 주었다.

약간이나마 먼지가 씻겨 나가자 보기에도 한결 깨끗해진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강아지는 꼬리를 쉴 새 없이 흔들며 내 옆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이 무척 즐겁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뉘 엿 뉘엿 해가 질 즈음 오빠가 집에 돌아왔다.

오빠는 잠시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열두 살이나 어린 동생의 황당한 행동에

"이 강아지는 내 거야"라고까지 떼를 쓰니 어찌 뭐라 나무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대신, 오빠는 자초지종을 물었고 웃어줬다.

그러면서 차분히 나를 달래며

"목욕을 제대로 시켜줘야겠구나" 하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강아지의 털과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용감하게 시장에 혼자 다녀온 것과 그 덕분에 귀엽고 예쁜 강아지를 얻었다는

스스로의 대견함과 기쁨에 우쭐해 있었다.

***

엄마가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

한참 후 오후 저녁 늦게 피곤에 지친 기색으로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봇짐을 내려놓으신 후 엄마는 곧바로 부엌으로 먼저 들어가셨고

오빠와 나의 존재를 슬쩍 확인하시더니 이내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느라 분주하셨다.

그때!

나의 하얀 강아지가 부엌으로 폴짝 뛰어 들어가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며

"왕! 왕! 왕!" 하고 짖었다.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감출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너무 놀라서

눈물이 찔끔 나버렸다.

엄마는 "이 개는 누구 집 개냐?" 하고 물으시며 일단 강아지를 마당으로 내보내시고는

오빠에게 주인이라도 찾아보라며 집 주변을 둘러보고 오너라 하셨다.

그러나,

오빠와 내가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기만 하자, 눈치 빠르신 엄마는 곧바로 나를 향해

약간 큰 소리로 호통을 치셨다.

"네가 주워온 거니? 어디서 데려온 거야?!

에그.. 지저분한 강아지를 어서 밖으로 다시 내보내던가! 아니 데려왔던 곳에다 다시 데려다 놓거라. 당장!"

엄마는 휙 돌아서시며 다시 저녁 식사 준비를 하셨고,

나는 그 순간 목구멍에서부터 설움이 폭발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친구들한테 배제돼서 외롭게 다녔던 것도 또 혼자 용감하게 시장까지 다녀온 것도 다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았다.

오빠는 내 어깨를 안아주며 엄마에게 차분히 말씀드렸다.

"어머니 막내가 시장에서 길 잃은 강아지를 주어왔데요,

막내가 종일 혼자 있으니 책임지고 잘 키우겠다고 저와 약속도 했고 저도 잘 도울게요.

지저분한 건 목욕을 시키면 깨끗해질 거고

막내가 저렇게 좋아하니 이번만은 허락해 주시면 어떨까요?"


평소 부모님 말씀에 거역하는 일이 없던 큰아들의 품행을 알기에,

엄마는 반신반의하시면서도 나를 다시 질책하고 꾸짖으셨다.

나는 눈물이 그치질 않고 꾸역꾸역 말대답을 했다.


"쟤도 나랑 같아. 길에서 혼자 다니고 주인도 없었어! 맨날 굶었는지

안아줬을 때 너무 가벼웠단 말이야. 쟤도 친구가 없어.

내가 키우면서 돌봐줄 거야! 으~아아앙 "

.....

엄마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휴~~" 하고 새어 나왔다.

그리고

정말이지 꿈만 같은 허락이 떨어졌다.

"대신 대소변은 아무 데서나 싸게 해서는 안된다. 집안에, 특히 실내에는 절대 들여서도 안 돼!

목욕도 자주 시켜주고, 알겠니! 네가 주워왔다고 해서 잘 돌보지 않고 함부로 키운다면

엄마도 어쩔 수 없이 강아지를 내다 버릴 거야.!"

나는 너무 울어서 힘없이 "네" 하며 대답을 하였지만

엄마는 다시 한번 더 중요한 말씀을 이어갔다.

"네가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해도 일단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거야.

어떤 말인지 알겠니? 네가 한 생명을 네 멋대로 들여왔으니 책임감을 갖고 키워야 한다는 말이야.

똑똑히 알아 들었지? 응?!"

나는 훌쩍거리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렇게 길게 당부의 말씀을 하신 엄마는 마지막에

혼잣말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라니, 쯧쯧" 하고 혀를 차셨다.

***


나는 오빠와 함께 유난히 둥글고 환한 달밤에,

마당에서 거품을 잔뜩 낸 비누로 강아지를 깨끗하게 씻겨 주었고

우리는 비로소 그 애의 하얗고 뽀얀 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도 반려동물이 가족이 되어 새로운 생활에 작은 즐거움이 생겼다.

그 아이는 곧 나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되었고

이름은 그 당시 영화 중에 크게 흥행하여 유명해진 '복서'의 주인공 이름을 따와

'록키'라고 지어주었다.

반려동물의 기준이 짐승이었던 시절에 우리 집에 기적 같은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른 듯했다.


***


록키를 맞이한 그날 이후,

가까운 훗날.

아빠는 내 나이 여섯 살 되던 해에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지셨다.

그로부터 내 나이 아홉 살이 되던 해에는 오빠가 신장병(콩팥암)으로..

11월의 어느 새벽 5시쯤 오빠는 눈을 영원히 감고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집안에서는 오빠의 죽음에 엄마의 절규와 친척들의 울음소리가 끅끅 눌려져

낮고 무겁게 퍼지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 갇혀 옆방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차마 죽은 오빠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고

무서웠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그 두려움

다시는 나에게 "우리 막내 밥 먹었어? 라면 끓여줄까?"

그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마비시켰다.

산소에서 땅을 파고 오빠의 관이 서서히 땅속 깊이 내려졌을 때 엄마가 관위로 뛰어내리셨다.

나는! 알았다. 그날 이후의 엄마모습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아빠의 묘 바로 옆에 미리 엄마의 묫자리를 사놓은 상태였는데 그 자리는 오빠 자리가 되었다.

오빠의 발인과 은구를 마치고 온 날 집 마당 구석퉁이에 나무로 된 록키의 집에서

록키가 어디서 쥐약을 먹고 온 건지 알 순 없지만 입에 하얀 거품이 뱉어진 채로 죽어있었다.

이제 집안에서는 지난 2년 동안 한약을 짓었던 그 냄새가 나지 않았다.

또다시 나는 집에 홀로 있는 날이 더욱 많아졌다. 학교를 마치고 오는 길에서 매일

큰소리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행'을 휘파람을 불며 어두운 집으로 향했다.


***


아빠와 오빠를 연달아 잃은 나는

갑자기 닥쳐온 부재의 고독과 상실감이 어린아이로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형용조차 할 수 없는 감정으로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새에 스며들었다.

그 광대하고 차디찬 공허함으로 인해 자꾸만 비닐 이동장롱 안으로 숨어들었다.

말도 안 하고 학교에선 날 선 아이가 되어있었다.

록키와 다섯 살이었던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세월이 흘러 내가 삼십 대가 된 성년이 되었을 때,

엄마마저 암에 걸리셔서 편찮으셨다.

엄마의 암은 발견되기도 쉽지 않은 담낭암이었고 암이 전이돼서 췌장암으로 퍼지셨다.

그 무거운 시기에 '비키'라는 이름의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두 번째 반려동물로 들어왔다.

엄마는 이 작은 고양이를 가끔 쓰다듬어 주시곤 했는데

그녀들의 동거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다. 엄마의 암은 점점 나빠져 비키와 나를 두고 떠나셨다.

나는 허망함과 고독, 그리고 슬픔에 짓눌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이 내 안의 깊은 바다를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비키와 대화를 하며 교감으로 사랑을 채우고 싶었다.

그런 행동이 나에게는 삶의 무상함을 채우는 유일한 출구였을 것이다.

비키는 2003년에 유기묘로 내게 입양되어 함께 살다가 2014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는 가족의 부재를 일찍 겪으며 그 그림자 속에서 살았지만,

되돌아보니 그 작은 동물들에게서 생명의 연대를 유지하고

이처럼 덧없는 세상에 나를 붙들어준 따듯한 털을 가진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현재 나는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어 자카르타에서

남편과 작은 고양이 'Lucy'와 함께 셋이 살고 있고

우리는 정말 끈끈하다.

지금의 위로가 언제나 건강하게 유지되기를 위해 힘쓰며

그리고 서로에게 사랑과 예의를 더하며 아름답게 살고 있다.

그렇다. 삶의 어느 중간 중간에서 무언가 떨어져 가고 다시 채워지고

비워지고 채워지기를 반복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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