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부의 유일한 :

화려하게 미친 존재

by lea

​90년대 초반, 나는 경기도 소재의 공대로 이름난 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에는 국민학교때와는 다르게 구김살을 티 내지 않는 밝은 아이였던 나는,

원하던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별로 좋지 않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창 시절 내내 다시 감정이 메마른 아이처럼 지냈다.

나보다 키가 10cm씩은 더 컸던 여섯 명의 단짝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짐짓 쎈 척하며 말수를 줄이고 시니컬하게 굴었던 것이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형편에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이과반을 선택했던 나는

그저 취업이 잘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 하나로 덜컥 공대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무뚝뚝하게 굴어도 착한 친구들이 그러려니 이해해 주었지만,

대학 생활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여학생이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했던 당시의 공대, 특히 전자과는 남학생들로 가득한 거친 정글 같았다. 그 속에서 나는 아프리카 맹수들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가냘픈 사슴 한 마리였다.

동기들은 이미 컴퓨터나 전자의 개념을 꿰뚫고 있는 듯 기세등등했고,

기계와 나무를 조여주는 ‘나사’ 따위의 부품밖에는 몰랐던 나는 그저 외모로만 평가받으며 은근히 소외당하기 일쑤였다. (그건 교수님도 비슷했다)

​그러던 어느 날, 1학년 전공 기초인 ‘브레드보드’ 실험 사건이 터졌다.

***

​입학 후 한 달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투명 인간이었다.

당시 X세대 유행에 맞춰 화려한 원피스를 차려입고 다니던 나는

남학생들의 시선이 늘 뒤통수에 머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행히 내 옆자리엔 항상 묵묵히 납땜 연습에 매진하던 ‘윤○○’라는 동기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어떤 옷을 입는지 중요하지 않아 했다. 그저,

내가 회로도를 보며 멍하니 있을 때면 아무 말 없이 제 노트를 내 쪽으로 쓱 밀어주던,

무뚝뚝하면서도 속 깊은 조력자 같은 친구였다.


​사건은 이랬다.

과에서 기가 세기로 유명한 복학생 선배 하나가 내 회로를 보더니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야, 네 이름이 ‘나사’냐? 맨날 나사만 쳐다보고 있게? 전자과는 머리 쓰는 곳이지,

얼굴마담이나 하는 곳이 아니야. 화려한 옷이나 입고 다니고 말이야,

모르면 그냥 윤○○ 꺼나 베끼지 말고 나가서 커피나 타 와.”


​그 목소리는 귓가에서 꽹과리를 치는 듯한 소음이 되어 내 안의 발작적인 분노를 깨웠다.

강의실에 묘한 정적이 흐르는 순간, 평소라면 입도 뻥긋 안 했을 윤○○가 내 손목을 툭 치며

낮게 읊조렸다.

“야, 네가 아까 나한테 물어본 거 있지? 저 선배 회로 틀린 부분이 딱 그거야. 그냥 말해버려.”

​그 한마디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고등학생 시절의 ‘대장 본능’이 불을 뿜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의 브레드보드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선배의 회로 선 하나를 가차 없이 뽑아버렸다.

​“선배, 전자는 자존심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전위차’로 흐르는 거거든요?”

“뭐? 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정신 나갔어?”

!!!

“아뇨, 아주 화려하게 제정신이고요. 선배 꺼 여기 접지(Ground)가 제대로 안 돼서 회로 다 타 먹게 생겼네, 어쩌죠? 지금 커피 타령할 때에요? 소방서에 전화부터 하셔야지.”

​나는 펜을 들어 선배의 리포트 여백에 ‘GND(접지) 재확인 요망’이라고 큼지막하게 휘갈겼다.

야수 같던 남학생들의 시선이 부드러운 놀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휘파람이 터져 나왔고, 누군가는 소리 없는 박수를 보냈다. 심장이 짧게 떨렸지만, 앞으로 남은 학기 내내 무시당하며 살 수는 없었기에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소동이 끝나고 복도로 나온 나에게 ○○가 캔커피 하나를 건네며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야, 너 아까 좀... 미친 것 같더라. 근데 멋있었어. 나사치고는 너무 단단한 거 냐?”

“네 친구 노릇 하려면 당당해야지. 나도 이제 너처럼 제대로 공부할 거야. 고맙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힘없는 사슴도, 그저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여학생도 아니었다.

든든한 친구 ○○ 덕에 위기를 공부의 기회로 잡은 나는,

공학부의 유일무이한 ‘화려하게 미친 존재’라는 전설적인 별명을 얻게 되었다.

패션도 여전히 튀었지만, 졸업 즈음엔 그 위상이 남학생들 못지않을 만큼 견고해졌고,

그날의 용기는 내 인생의 판도를 바꿀 여러 가지 사건들 중 하나였지만 결핍을

하나하나씩 깨고 앞으로 나가게 해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책을 정말 많이 읽는다. 공부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고마운 친구 윤○○뿐만 아니라 그 시절을 거쳐 간 모든 인연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움이 있었고, 그것은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 사람에게서 배우고 책에서 배우며, 동식물 등

만물에 배움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

​어느새 오십 대 중반이 되어 시원찮은 건강 탓에 고생은 좀 하고 있지만,

인정사정없는 삶이란 누구에게나 비슷할 것임을 알기에, 별의별 일 겪어온 세월이

좋은 추억이 되고 축적이 되어 멋지게 늙어가는 맛이 생긴다.

***

​카페에 앉아 그날을 회상하니 다시 한번 웃음이 지어진다.

“하, 오늘도 이렇게 좋은 추억이 떠오르는구나. 좋구나, 좋아.”




오늘도 한층 더 품격 있게 '멋지게 늙어가는 맛'을 느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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