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오늘 새벽에도 여지없이 시곗바늘이 2시를 가리킬 때 눈이 떠졌다.
미친 체온조절이 벌써 몇 달째
내 몸속의 예민한 신경들이 그 시간에 맞춰 일제히 깨어나도록 고정되어 버린 기분이다.
갱년기라는 불청객이 가져온 이 불면의 시간은 다분히 폭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기묘하게 고요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칠흑같이 어두운 발코니를 물끄러미 멍한 시선으로 보다 보면,
세상에 나만 붕 떠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든다.
침실에서 남편의 깊은 '잠소리' 리가 부럽기도 하다.
잠시 눈을 붙였다 떼면 어느덧 4시.. 5시.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이 무의미한 흐름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 새벽의 공백은 인생이 나에게 강제로 부여한 '사색의 잉여' 일지도 모른다고.
다행인지 아닌지.
우리 부부에게는 돌봐야 할 자녀가 없다. 결혼한 지도 벌써 20년째가 다가왔지만
그 여러 해 동안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내게 자궁에 문제가 생겨 절제술을
하고 나서는 이 일(아이)에 대해서는 더 할 게 없었다.
외롭고 세상과 단절된 느낌은 받았었다..
누군가는 그저 아쉬움이라 말할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에게는 이 지독한
우울과 갱년기의 파도를 온전히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자유'라는 억지스러운 이름의
안도감으로 위로한다.
아침 9시.
몸은 여전히 천근만근이지만 나는 나만의 의식을 시작한다.
우선, 미지근한 물 한잔으로 위장을 깨우고, 제자리 뜀뛰기를 60번 한 다음 어느 정도 열이 오른 몸을
찬물로 샤워를 한다. 차가운 수압이 피부에 닿는 순간, 구석구석 잠들어 있던 세포들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다. 다행히 자카르타의 찬물은 한국의 수도관에서 나오는 찬물 과는 온도차가 있으니
얼음장 같은 건 아니다. 찬물 샤워는 단순히 몸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
어둠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일종의 '정화'작업이다.
물기를 닦아내고 나는 곧바로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를 두 번씩 꼼꼼히 덧바르고 옷을 걸친 후
운동화를 신는다. 일단 문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적어도 정신의 불편함은 현관문 안쪽에 가둬둘 수 있다는 사실을 침대 안에서 움직이지 못할 때의 경험으로 배웠다.
나의 목적지는 쎄노빠띠 거리에 있는 '옴베커피' 다.
그곳의 높은 천장과 목조로 만들어진 자연친화적인 인테리어는 나에게 적당한 안정감을 선물한다.
주변의 소음은 오히려 적절한 익명성과 백색소음이 되어 내 생각의 타자기를 두드릴 수 있게 해 준다.
자카르타 인들은 유난히 잘 웃고 친절하다. 특히 외국인에게는 더욱.
나는 직원들의 친절한 미소를 곁들여 차 한잔을 마시며, 일주일에 두서너 개의 글을 쓴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손으로 종이에 적는 방식을 좋아해서 아직도 노트와 볼펜을 이용한다.
아직 초보이고 비록 매일 캔버스 앞에 앉아 있지 못하는 화가 일지라도
글을 쓰고 수영을 하는 이 루틴이 야말로 '나'라는 화가가 삶이라는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인 셈이다.
작은 기기활용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쓸 때는 정갈한 글씨체를 위해 천천히 손가락을 굴리고 그림을 그릴 때는 캔버스에 섬세한 손놀림으로 물감을 해체하여 표현하고
수영을 할 때조차 팔과 다리도 중요하지만 물을 가를때 손가락으로 물의 흐름을 느끼는 게 좋기 때문이다.
***
시간이 흐르고 집으로 돌아가면 작은 털북숭이 '루시'가 나를 맞이한다.
산책을 나갈 용기는 없지만 온종일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이 작은 고양이는
사람 아닌 유일한 아기이기도 하고 늘 내 곁을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지켜주는 온기다.
지난 몇 년간,
나는 길고 끝을 알 수 없는 구부러진 터널을 걸어왔고 아직도 걷고 있다.
아직은 출구의 빛은 보이지 않고 터널은 여전히 어둡고 굴곡 져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끝이 어디냐'라고 묻지 않기로 했다.
인생이라는 건 크로스컨트리 같기도 하고 높은 산을 등반하는 것과 같아서
내가 몇 등으로 들어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리하지 않고, 너무 애쓰지 않으며,
그저 한 발짝씩 내딛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기로 한 것이 중요하다.
터널 중간 어디쯤에서 나는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이런 병을 앓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고 있다"라고.
나는 타인의 시선보다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결국 나를 가장 깊이 사랑해 줄 사람은 나 자신뿐이니까.
언젠가 터널 끝에서 마주할 그 눈부신 빛은,
아마도 매일 옴베 커피에서 썼던 문장들과
또 매일 수영장 물살을, 물속의 흔들리는 포말들을 힘차게 가르며
검게 그을려진 내 피부 위로 가장 먼저 내려앉을 것이다.
그날까지 나는 어쩌면 이토록 다정한 루틴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오늘도 할 건 했고,
이 피부에 새겨진 햇살의 흔적들이야 말로 삶을 성실하게 걷고 있는 아름다운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
부디,
어제보다 조금 더 더 평온한 잠으로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