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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모사 Nov 17. 2019

아인슈페너 두 잔

   유라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남녀를 보는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가 일하는 카페 안에는 미대 출신 사장님의 작품인 석고상들 10개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유라는 지금 11번째 석고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막 들어온 그 커플 중 여자는 유라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녀는 유라와 친자매처럼 지내는 동생 하경이다. 둘은 독서토론 동호회에서 만난 이후로 2년 넘게 끈끈한 워맨스를 유지해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놀랍도록 잘 맞는 취향 덕이 컸다. 책, 영화, 드라마, 음식, 심지어 남자보는 눈까지도 두 여자의 의견은 90% 이상 일치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유라는 생각했다. 3년 전 헤어진 남친이 친한 동생의 새 남친이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날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 그리고 그 어려운 걸 해내는 하경이 너는, 너희들은 뭘까. 

  유라가 서있는 카운터까지 다가온 하경은 팔짱을 끼고 있던 남자와 유라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언니, 내 남자친구. 이름은 서지훈. 오빠, 이쪽은 나랑 제일 친한 언니, 유라 언니라고 해.  여기 카페의 능력 쩌는 매니저님이고, 오빠랑 동갑이야. 둘이 인사해요.”


  해맑은 만큼 거침없는 하경의 리드에 따라 유라와 지훈은 3년만의 재회를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사와 함께 얼결에 치뤘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상대를 재빨리 스캔했다. 서지훈 이자식, 몸 좋아졌는데? 나랑 헤어지고 집중적으로 분노의 PT라도 받았나? 허유라, 오랜만에 보니까 헤어스타일 완전 달라졌는데? 긴생머리 진짜 어울린다. 화장법도 좀 바뀐거 같고. 그렇게 둘은 하경을 사이에 두고 3년치의 호기심과 약간의 그리움이 섞인 시선, 상념들을 교환했다. 



  “오빠. 뭐 마실래? 여기 다 맛있어.”

  하경은 반짝이는 눈으로 메뉴판을 좆고 있었다. 지훈은 황급히 하경을 따라 메뉴를 훑었다. 아무리 고심해봤자 넌 그거잖아, 아인슈페너. 유라가 생각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호하는 보통 남자들과는 달리 유라가 기억하는 지훈은 달달한 크림과 진한 커피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인슈페너, 비엔나 커피로도 불리는 그것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겨울 뿐 아니라 한여름에도 따뜻하게 마시는 것을 선호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훈이 말했다.

  “난 아인슈페너.”

  지훈의 주문이 끝나자마자,

  “따뜻한 거,”

  맞으시죠? 라고 하려다 유라는 멈칫했다. 웬 오지랖이야. 그러고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로 하시겠어요, 아이스로 하시겠어요?”

  “...따뜻하게 해주세요.”

  둘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엉켰다가 떨어졌다.

  “그럼 나도 그걸로 마실래. 언니, 맛있게 부탁해용.”

  하경이 말했다. 



   계산을 마친 지훈과 그의 팔을 붙잡은 하경은 창가 쪽으로 가서 자리 잡았다.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하경의 얼굴에는 연애 초반의 순도 100% 설렘과 행복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래. 나도 쟤랑 처음 사귈 때는 저런 얼굴이었겠지. 큼직한 머그컵 두 잔에 투 샷씩 따르며 유라는 생각했다. 사실 3년 전 지훈과 뭣 때문에 헤어졌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만 지훈과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의 두근거림, 눈부신 행복감, 이런 것들만 유라의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한마디로 지훈은 좋은 남친이었고 헤어진 후에 유라가 욕하지 않았던 유일한 ‘구남친’이었다.


  유라는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 그녀가 아끼는 여자동생과 아꼈던 남자의 새 출발을 축하하며 진하고 고소한 크림을 커피 위에 곱게 세팅했다. 쟁반에 예쁘게 플레이팅 된 두 개의 머그잔을 놓고 지훈과 하경의 테이블로 걸어가며, 오늘은 퇴근하고 집에서 남편이랑 와인 한잔 하고 싶네,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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