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봉사자의 네일 관리
매년 여름이면 봉숭아꽃으로 손톱에 물을 들인다. 봉선화라고 칭하는 게 더 맞을 것 같긴 하지만, 어려서부터 친근하게 불러오던 명칭이 더 끌린다. '봉숭아'
일반적인 매니큐어가 형형색색의 '아트'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도톰한 질감과 내구성이 큰 젤네일은 내 맘을 사로잡기까지 했다. 동네에 한 명쯤은 있다는 '아는 언니'손에 이끌려 네일샵에 방문해 보기도 했다.
일시적으로, 그것도 한두 번 정도 네일아트를 해본 것 같다. 이런 나에게 주변 지인들은 묻곤 했다. 왜 예쁘게 네일을 하지 않는지.
대외적으로는 '손톱에 매니큐어를 얹으면 답답하다.'라는 이유를 들지만, 진짜 이유는 '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처음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할 무렵, 깨끗한 옷과 전용 가운 그리고 손톱관리를 당부했었다. 손톱은 매니큐어 칠하지 않고, 잘 깎아서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
그때 이후로 손톱에 무언가를 하는 행위는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종종 월요일에 공휴일이 겹치거나 휴가 기간으로 한 주 쉬게 되면, 총 2주간의 '기회'?! 가 생기곤 한다. 그럴 때 네일아트를 해본 것 같다.
손톱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하지 말라는 한 마디에 잘 갇히는 성격이다. 학창 시절에도 숙제는 꼭 집에서 착실하게 해야 한다고 여겼고 교복 치마는 무릎길이를 딱 맞춰 졸업했다.
메르스와 코로나로 병원을 가지 않았던 기간에 했으면 좋았을 거라 회상한다. 그런데 그땐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무서워서 손톱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던 것 같다.
손톱에 무언가를 하고는 싶고... 하지 말라는 말도 잘 듣고 싶었던 내가 찾아낸 대안책이 바로 '봉숭아물들이기'였다.
어린 시절 외가댁에 가면 친척들과 봉숭아 꽃을 가득 뜯는다. 꼬맹이들이 뜯어 온 꽃과 이파리들을 모아 놓으면, 어른들이 나서서 백반을 한 꼬집 넣고 같이 빻는다. 어느 날은 꽃잎에 개미가 우글우글한 걸 보고는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었다. 잘 빻은 꽃잎과 이파리를 열 손가락에 얹어두고 조각조각 잘라놓은 비닐로 한 번 감싸 쥔다. 할머니의 비장의 무기 '명주실'을 잘라 손가락 마디를 묶어 주면 1단계 완성이 된다.
세월이 지나면서 도구들도 진화를 거듭했다. 랩으로 돌돌 말면 실을 사용해서 묶을 때보다 편리하게 완성할 수 있다. 다만 잘 빠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다양한 시도 끝에 최적의 방법으로 선정된 건, 비닐장갑을 활용하는 것이다. 장갑의 열 손가락 부분을 잘라서 준비한 뒤, 투명 테이프로 한 바퀴 돌려 붙여주면 끝이다.
2단계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상하게 머릿속이 계속 간지럽기도 하고, 등도 유독 가렵다. 빳빳하게 굳어서 불편하게 잠드는 밤이 지나고 나면, 기대감에 부푼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적어도 1~2주간은 손가락 전체에 물들어 있는 다홍색을 피할 수 없다. 가루로 편하게 하기도 하는 요즘, 천연 꽃잎으로 했다는 인증이기도 한 셈이지만, 지저분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올해 여름도 어김없이 봉숭아물을 들였다. 호스피스 봉사를 가면, 환자와 보호자가 각자의 추억을 회상하며 한 마디씩 이야기할 것이다. 어린 시절 본인이 봉숭아물을 들였던 경험부터 최근 손자, 손녀들과 같이 했던 추억까지 소환되곤 한다.
봉사를 마치고 출근하는 길에 얄팍한 미소가 지어졌다. 곧 마주할 학생들의 깜짝 놀란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깜짝 놀라서 이야기했었다.
"선생님!! 선생님 손에서 피나는 것 같아요! 119 불러드릴까요?"
수업시간에 아프다고 하는 학생한테 '119 불러줄까?'라고 말해왔던 내가 그 말을 듣게 될 줄은... 수학 학습 성장만큼 빠르게 모든 걸 습득할 나이인 것 같다. (그래도... 수학 학습 성장에 좀 더 매진해 줄래...?)
예쁜 젤네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손끝에 얹어 놓은 봉숭아 꽃잎이 봉사로서 마주하는 환자들의 마음에도 따뜻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