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번쯤 마주쳤던 것 같다. 처음엔 그저 눈인사를 나눴을 뿐이었다.
남자 병실이었고, 창가에 계시는 씩씩한 꽃님이 늘 발마사지를 요청하는 병실이었다. 유독 멍하니 누워 계시던 목련 같은 꽃님은 발마사지 하겠냐는 물음에 고개만 저으셨다.
몇 주 동안 여름 날씨는 우기를 지나는 것 같았다. 비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긴 터널 같은 날씨였다. 걸어도 걸어도 첨벙첨벙 축축했다.
길었던 우기 터널도 어느샌가 지나고, 무더위의 시작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창가에 계시는 씩씩한 꽃님이 어김없이 발마사지를 받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병실 창가 쪽 배드에 누워 있으면 하늘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병원 오는 길에 날씨는 어땠는지 물으셨다. 허구연날 비가 오더니 오랜만에 맑은 해를 봐서 좋다고 하셨다. 그 좋은 말에 나의 대답은...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별로였다.
“이제 무더위가 시작할 거래요. 오는 길이 무척이나 더웠어요.”
맑고 예쁜 하늘과 해를 보며 기뻐하는 꽃님에게 저런 초치는 대답이라니... 시간을 돌려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오는 길에 하늘이 얼마나 파랬는지, 비가 갠 이후라 공기가 참 상쾌했다고, 좀 덥지만 꿉꿉했던 것들이 바짝 마르는 것 같이 좋았다고’ 대답해 드리고 싶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한참이나 듣던 목련 같은 꽃님이 병실 여사님(통합 간병인)에게 무엇인가 말하는 것 같았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병실마다 통합 전문 간병인이 상주하고 있다. 나는 워낙 소극적인 성향 탓에 호칭을 모르겠을 때에는 피하고 본다.)
이윽고 간병인이 내게 와서는 목련 꽃님의 발을 마사지해달라고 하셨다. 그런데 한쪽 다리가 의족이라 다른 한쪽만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닌가.
늘 차분하게 이불을 덮고 누워 계셔서 의족이란 걸 몰랐다. 한쪽 다리가 없는 분을 어떻게 발마사지 해드려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발마사지를 시작한 후, 이건 내 기우였다는 것을 알았다.
목련 꽃님은 아무렇지 않게 의족을 벗고 양다리를 곧게 편 채 누워서 기다리고 계셨다. 먼저 온전한 한쪽 다리와 발을 마사지해드렸다. 다른 몫까지 감당해 내느라 두배로 힘들었을 다리를 마사지했다.
그러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작은 고민을 시작했다.
‘한쪽 다리만 해달라고 하셨는데, 왜 의족까지 벗어 두셨을까. 그저 아무 의미 없을까? 다른 한쪽도 마사지해달라고 하시는 걸까?
의족을 벗어 둔 다리를 자꾸 쳐다보면 실례일 것 같아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른 쪽 마사지를 했지만, 호수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처럼 물속 다리는 정신없이 첨벙 거리며 고민에 휩싸였다.
발 마사지가 끝나갈 무렵 나는 작은 결정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의족을 벗어 둔 다리도 발마사지를 하기로 결심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를 되뇌며 반대편 다리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발 마사지는 무릎부터 발 끝까지 전체를 쓸어내리며 시작된다. 그리고 무릎부터 종아리, 발목, 발가락, 발바닥, 다시 전체를 쓸며 마사지를 마무리한다. 림프 순환을 돕는 마사지 방법으로 자원봉사자 교육을 처음 시작했던 때나 중간중간 보수교육을 통해서 지속적인 교육을 받는다.
목련 꽃님의 의족을 벗어둔 다리의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무릎부터 종아리 중간까지를 쓸어내렸다. 종아리 중간쯤 끝나버린 둥그런 살갗이 단단했다. 의족을 바치고 서느라 굳은살이 베긴 듯했다.
다른 꽃님들과 똑같이 무릎부터 쓸어내리며 림프 순환이 잘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오늘 오후는 더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릎을 마사지했다. 가녀린 종아리도 마사지했다. 처음은 어려웠지만 목련 꽃님의 편안한 표정 덕분에 오히려 나의 마음이 평안해지는 듯했다.
그날 이후로 매주 발마사지를 받으셨다.
의족을 내려놓고 다리를 맡긴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 번 발마사지를 하며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건, 이게 그렇게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저 나와는 다른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머리색깔이 다르고 키가 다르고 어깨너비가 다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