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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묘 Oct 07. 2024

엘리베이터 문이 계속 열릴 때

겁이 많은 편이다.


혼자 잠드는 밤엔 무드등이 필요하다. 무드등이 나보다 늦게 잠들 수 있도록 타이머를 설정한다. 작은 소리에도 상상력을 발휘하는 나 자신이 무서워서 태블릿에 영상도 하나 켜둔다. 물론 얼마 뒤 저절로 꺼질 수 있도록 설정해 둔 채로.


어느 여름날, 무서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었다. 함께 보는 친구의 취향을 한껏 반영한 장르선택이었다. 기피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마음 편히 영화를 볼 수도 없었다.


지나치게 많이 놀라는 편이라 영화가 끝날 무렵엔 뒷목이 뻐근했다. 깜짝 놀라면서 들고 있던 팝콘이 무릎에 쏟아져 버린 적도 있었다.








나는 출퇴근 시간도 아깝다며 대치동 독거노인을 자처했었다. (아, 요즘엔 홀몸 어르신이라고 하는 것 같다. 짓궂은 친구들 사이에서 '대치동 독거노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서 자취할 때 보다 보증금을 늘렸고 방 컨디션은 더 안 좋아졌지만, 덕분에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걸어서 출퇴근한다. 월요일은 오전에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고, 오후엔 잠시 출근해서 수업을 한다. 


특별히 다를 것 없던 월요일, 호스피스 병동으로 향했다. 지옥철에 잠시 휩쓸리며 직장인 흉내도 내본다. 병원에 도착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향한다. 이 모든 과정은 줄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멍하니 진행된다. 마치 자동화된 시스템처럼. 


그날도 지하철 역과 연결된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을 누른 뒤 한참을 서 있었던 것 같다. 흐릿했던 정신을 깨운 건 ‘엘리베이터 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문이 안 닫히는 게 아닌가.


처음엔 그저 시간이 좀 걸리는 줄 알았었다. 원래 닫힘 버튼을 잘 누르지 않아서 기다리는 게 익숙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다 열리고, 다시 닫히려다 열리기를 반복했다. 고장 났을까 싶어 내리려는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그때 무심코 이런 생각을 했다.


‘누가 타셨나 보다. 탈까 말까 주춤하셨나? 나와 같이 호스피스 병동에 가는 영혼일까?’


그리고는 그 겁 많던 내가 뜻밖의 평온함을 느꼈다. 누구였을지 추측하며 친밀감을 느끼기도 했다.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하며 호스피스 병동으로 향했다.








그날 봉사 시작 전, 환자 브리핑을 받으며 흠칫 놀랐다. 오늘 아침 환자 한 분이 임종하셨고, 아직 별님방에 계신다고 하셨다.


임종하신 별님은 여러 번 만나 뵈며 발마사지를 해드렸던 분이었다. 유쾌한 성격과 시원시원한 말솜씨로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아까 같이 엘리베이터 탔던 영혼이 그 꽃님이었다고 생각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길. 지하철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괜히 열림버튼을 꾹 눌러보았다. 








여전히 밤이면 무드등에 의존해서 잠이 들곤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늘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 같다. 무서운 것들이 때로는 따뜻하게 다가오는 그런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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