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예쁜 마음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가는 건 아니다. 조금 아프기만 해도 결석의 구실을 만들곤 한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핑계를 앞세워 결석을 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염성이 있는 질병 말고도 만성피로나 근육통이 ‘아픈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건 좀 부끄러운 이야기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지금껏 손에 꼽을 만큼이다.)
오래간만에 찌뿌둥한 월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돌돌 말린 이불은 온몸을 잡아끌며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5분씩, 3분씩 알람을 뒤로 맞추며 마지노선에 0.1초 앞두고 나서야 일어났다. 전철 안에서도 멍하니 혼을 빼놓고 있었지만, 종점에 위치한 병원 덕분에 역을 지나치진 않았다.
이렇게 도착한 호스피스 병동은 그야말로 노동의 현장이었다. 먹구름 잔뜩 낀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이어갔다. 큰 키 때문에 병실 침대를 아무리 올려도 허리가 아파서 양다리를 쫙 벌리고 서서 발마사지를 한다. 평소에는 익숙하게 여겼던 것들이 고행으로 다가왔다.
어느덧 자원봉사가 끝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마지막 여자 병실을 들어갔을 때, 눈길이 가는 꽃님이 있었다. 허공을 응시한 채 미동 없이 누워 있던 꽃님. 커다랗고 하얀 꽃 한 송이가 부서지며 여기저기 떨어져 뿌연 안개꽃이 된 것 같았다.
안개꽃님이 발마사지를 요청한 건 아니었지만, 간병하던 보호자의 요청으로 발마사지를 시작했다. 보호자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안개꽃님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네 마음은 어때?”
조용했던 병실에서 나 또한 멍하니 발 마사지를 하고 있었기에, 처음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었다.
“네?”
하고 되묻자 안개꽃님이 다시 말했다.
“네 마음이 어떠냐고.”
영혼 없이 습관처럼 움직여 발마사지 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오롯이 집중해서 마음을 담지 않으면 환자는 그걸 아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얼어붙은 내가 아무 말도 못 하자, 여전히 천장을 응시하던 안개꽃님이 말을 이었다.
“괜찮아. 크게 말해도 돼”
차분하고 낮은 음성에 어쩔 줄을 몰라 가만히 서 있었다. 뇌 속의 뉴런이 전기 자극을 멈춘 듯했다. 병동에 한 명씩 배정되어 통합 간병을 하는 간병인이 다른 환자를 돌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나에게 말했다.
“그 환자, 섬망 증상이 있어서 계속 엉뚱한 말을 해요. 신경 쓰지 말고 발마사지 하세요.”
아니나 다를까 그 뒤로 안개꽃님이 쏟아내는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옆 방에 가서 사과를 가져오라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한 참 부르며 찾기도 했다.
발마사지를 마무리하면서 안개꽃님이 던졌던 물음을 한참 곱씹었다. 호스피스에 오는 내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와야 하는 걸까?
나의 마음을 묻는 말에 마음 깊은 곳이 쿡 찔려왔고, 괜찮다는 그 말이 작은 반창고가 되었다. 때로는 이런 귀찮은 마음을 가지고 와도 되는 것일까? 어쩌다 한 번쯤은 ‘괜찮아’하고 모른 척해주길 바라는 나의 생각이 부끄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