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은 호스피스의 날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기념하고 지지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지정된 날이라고 한다.
나는 '사회적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이곳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삶을 더 찬란하게 살아가게 하지 않을까?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나는 꽃님들과 가슴 아리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평생 미뤄왔던 애정표현도 한다. 종종 "평생 살면서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거 처음 들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간병하는 아내분들을 보곤 한다.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던 누군가를 용서하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보듬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고요한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진심 어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간다.
오늘은 수선화 같은 꽃님 덕분에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발마사지 하면서 얼굴은 여러 번 뵈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없는 꽃님이었다. 통합간병인의 요청에 발마사지를 하게 되었다. 건조한 날씨 탓에 다리 피부도 푸석했고, 발마사지 크림을 바르는 족족 스며들어갔다. 부종이 있었기에 림프순환 마사지를 하며 강도를 가장 약하게 했다.
창가 바로 옆 자리라서 하늘이 파랗게 보였다.
"가을이 참 짧아요. 벌써 겨울이 된 건지, 오늘 병원 오는 길이 추웠어요."
말은 없으셨지만, 하늘을 향한 시선을 보며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알았다. 전체적인 신체 컨디션이 말을 하기 힘든 상황이란 걸 알기에 답변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이내 수선화꽃님에게 말했다.
"병실이 너무 건조하죠? 마사지 크림 바르면서 쓸어내리기만 했는데도 발에서 윤기가 나요!"
나의 말에 수선화꽃님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지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꽃님의 감정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발마사지가 진행되는 동안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시며 마음을 표현하셨다. 마사지가 끝나자 나는 꽃님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가 잘 들리도록 크게 인사드렸다. 마스크 안에 숨겨진 미소를 전달하고자 눈으로 찡긋 웃어 보이기도 했다.
마사지 용품을 챙겨 나가려는데 수선화꽃님이 갑자기 손을 들어 보이셨다. 엄지와 검지를 크게 교차시켜서 처음엔 몰라봤었다. 자세히 보니 '손하트'를 하고 계신 거였다.
극강의 I인 내가 병실 한가운데에 서서 양손으로 손하트를 만들어 허공에 휘휘 저었다.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말하며 손하트를 휘익 흔들어 보였다.
옆에 계셨던 통합 간병인과 옆자리 보호자님이 이 광경을 보고 놀라셨다. 다소 무뚝뚝하고 말씀 없으셨던 꽃님이 먼저 내보인 손하트에, 온 병실이 활짝 핀 수선화꽃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호스피스 자원봉사가 끝나고 가는 출근길은 고행길 같다. 그런데 오늘은 그 길에 잔잔하게 피어난 수선화 덕분에 제법 걸을만했다.
자원봉사를 할수록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함께 한 발마사지 10분 남짓. 그 시간이 마음에 꽃을 피우고 그날 하루를 꽃밭으로 만든다. 내가 하는 작은 행위에 비해 늘 큰 마음을 선물 받는다.
수선화 꽃님도 오늘 하루가 통증 없는 평안한 꽃밭이었길 바란다.